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칭했던 한 해,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2020년이 오기 전부터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다. "2020년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해야". 남편은 이직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자격증 준비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본인에게 첫 이직이자, 가장으로써의 무게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나 역시 석사 졸업을 앞두고, 논문을 써야 했고, 동시에 중요한 자격증을 준비해야 했다.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가 혼란스러운 때에 남편은 좋은 직장에 이직을 성공하였고, 온라인 I.T기업이라 2월부터 줄 곧 재택근무를 하였다. 나는 논문을 쓰고, 한상심 자격증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수련을 열심히 쌓았다.
카페 커뮤니티에 보면 한 달, 세 달을 잡고 공부했다는 이들이 있었다. 불안이 높은 나로서는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두었다. 시험 봐야 할 과목을 이론 서적 2권 이상을 읽어가며 정리하고, 읽고 또 정리하고, 외워야 할 것은 노트로 정리해두었다.
그렇게 정리한 노트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거나 외워지지 않는 내용은 다른 색으로 표시해두었다. (이러니까 무슨 비법 전수 같은데... 대단한 것이 없는 게 함정이다) 끈질기도 묵묵하게 하는 것이 내 성격이었기 때문에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만이 내 직성에 맞았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온라인 채용 및 감독 등의 일을 하는 듯..)가 너무나도 바빠진 남편과 공부해야 하는 나는 늦게까지 서로의 일을 하기 일쑤였다.
원래 시험은 쉬는 시간이 있었으나, 이번 해에 코로나로 인하여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시험 전까지 긴장됐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학습 심리학에 발목을 잡힐 뻔했지만 무사히 통과하였다(평균이 60점이 넘어야 하고, 모든 과목은 40점 이상이어야 한다).
필기시험 준비를 하면서 수련을 쌓으면서 논문을 쓰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장염에 여러 번 걸렸었고, 밤마다 식욕이 폭발했다. 그렇게 필기에 합격하고 동시에 논문도 무사히 통과하였고, 자격증의 필기도 면접도 무사히 통과하였다. 그렇게 달성 해려고 애를 쓰던 것들이 모두 달성되었다.
어제 남편과 밤 산책을 하던 중에 남편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올해 초에 이번 연도가 우리한테 정말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
"정말 중요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게 좀 허무해"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정말 허무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도 중요한 고비를 잘 넘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상담이 중단되고, 휴관되어 타발적 휴식기에 들어섰다. 그뿐이랴, 취업이라는 대목이 가로막고 있을 줄이야. 친한 선생님과 안부를 전하던 중, 요즘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기억이 난다.
"지도 하나, 나침반 하나만 가지고 숲 속을 헤쳐 나왔더니 보이는 것이 망망대해인 기분이랄까요"
(어쩌면 숲 속에 있었던 것이 안전할지도..) 취업은 취업대로 코로나는 코로나대로 나를 흔들었다. 악을 쓰고 놓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고 목매단 게 무색할 만큼 2020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남편이 재택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일상의 부스러기도 함께 했다.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몇 번을 해 먹었는지 셀 수야 없겠지만, 그때마다 서로 키득거리며 찍어놓은 사진들이 사진첩에 수두룩하다. 애써 꺼내본 적 없던 사진들을 모아보니 2020년 진짜 잘해 먹었다.
이렇게나 많은 음식을 만들고, 먹었다.
우울한 증상을 낮춰주는 데 효력이 있다는 요리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우리 일상을 다채롭게 해 주었고, 이제 와서 추억해보니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사진마다 담겨있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이번 해에 쳐다본 하늘 사진은 유독 많았다. 밖에 나가지 못해 쳐다본 창문 밖에 하늘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곤 했으며,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는 날 혹은 서울로 출근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하늘 사진을 찍어댔다.
2020년 해는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해라고, 친한 지인과 연락할 때마다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남편과도 수없이 이야기했었지. 장애물 달리기 선수들은 100m 달리기 종목과 다르게 장애물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맹목적인 스피드를 지양한다. 장애물을 잘 넘기 위한 도약의 수단으로 달리기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2020년에 그 달리기를 해왔고 바라고 바랬던 장애물을 넘었다. 나와 같은 과제가 주어진 자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장애물을 넘고 나니까 넘어야 할 장애물을 생각지 못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넘고 나니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재난 앞에 나는 작은 먼지와 같은 존재일 뿐이고, 전문 상담인력 앞에 나는 그저 경력이 더 필요한 상담사였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젯밤 남편과 산책길에 던졌던 질문에 답을 하려니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2021년을 맞이한다. 앞으로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의 식탁을 추억했던 것처럼, 예뻐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 찍은 것처럼 그 힘으로 또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 속에 훔쳐진 보물을 캐내듯이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차곡차곡 살아보련다. 요즘은 차곡차곡이란 말을 좋아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곡차곡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저리가 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차곡차곡 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달성해온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앞을 바라보며 이 또한 이렇게 달성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련다.
2020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