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루가 돼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날이 있다.
가루가 되어서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만큼 지겨운 일상이 계속된다고 느껴지는 날. 사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갔었다. 봄이 됐다 싶은데 곧 여름이 오고, 여름의 초복과 중복 말복이 연달아 오고 거짓말 같이 선선해지며 가을이 오곤 했다. 가을을 만끽했나 싶었는데 그 새 겨울이 됐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해가 있을까.
하루하루가 지겨운 일상같이 느껴져서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은 해.
누구에게나 있을까.
고등학생 시절 체력 감정에서 오래 달리기를 뛰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 바퀴를 몇 번째 돌고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 거의 다 돌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돌고 보니 마지막 바퀴가 아녔다는 걸 아는 기분이 든다.
아주 착잡하다.
# 오늘만큼은
상담사라고 해도 또 심리 관련 이론 공부를 했다고 해도 내 심리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의 상담이 필요한 때가 너무 많다.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인 이유를 모르거나, 혹은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어떻게든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목구멍에서는 깊은 한숨만 나온다.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까.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심리 공부를 시작한 건데, 정작 나 또한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자괴감마저 드는 요즘이다.
오늘만큼은 최대한 나에게 관대해야겠다.
털어놓지 못해 목구멍으로 삼켜냈던 감정들을 잘 소화시켜 보도록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