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Mar 20. 2024

나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걸 잊지 말자


  또 찾아온 우울. 한동안 괜찮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아프고, 남편과 내가 따라 아파 앓는 동안은 우울할 틈이 없었다.


조금씩 회복되자, 이상하게도 가뿐한 몸이 아닌 축축 쳐지고 무거운 몸과 마음이 나뒹굴어 주어 정비할 여력이 없다. 그냥 나도 그자리에 나뒹군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어찌어찌 간다.


이렇게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집 앞 카페에 나왔다.

글과 관련없는 카페지만 카페 사진을 넣어본다



일주일 가량 집에만 있다가 처음 나온것치곤 신나지도 하고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불행할 뿐.


전에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책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무작정 읽기 시작한다. 재밌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네. 맞다. 난 책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더 섬세하게 소개하자면, 활자위에 떠오르는 영감을 낚아채는 기분이 좋다.


책의 주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영감을 받은 것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어느 책 예시였다. 책 제목을 보자 마자 떠오른 은하수의 이야기가 있어 이를 서두로 따다 내 이야기들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연재의 시작이 될줄이야…)


어찌보면 산후우울증환자의 고군분투기라고 볼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자면 난 우울증을 치료하고 돌아가야할 명분이 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신화 속에 나올것만 같은 신비로운 눈망울, 깐 달걀처럼 하얗고 뽀얀 피부, 살살 녹이는 웃음, 밥알을 달아놓은 듯한 이빨 두개. 그 아이한테 돌아가야하기에 이 우울을 치료해야한다.




그 자가치료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 그니까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내는 영감 낚기(?). 하고 있노라면 최면상태의 날 누군가 흔들어 깨워댄다.


그래 나 이런거 좋아했었지


내가 내 좋아하는 일을 다시 상기시키고 재현하는 일은 나에게 좋은 일이지만, 아이에겐 엄마가 리프레쉬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더 좋은 일이다.


아이는 그저 오늘도 자기 본능과 감정에 솔직할뿐이지, 엄마가 지금 기쁜지 우울한지 전혀 헤아릴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그걸 헤어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좋은 일은 엄마가 엄마 일을 하는 것, 엄마가 엄마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 아닐까.


워킹 맘이든 본업 맘이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고 그 일을 놓고 살아간 세월이 길수록 내 일상은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고작 카페에서 책하나 읽으러 나온 1-2시간에 난 그렇게 재정비가 되어 다시 들어간다. 이제 아기의 짜증섞인 울음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대량의 배터리를 충전한채.




이 글은 서랍에 넣어둔 채 시간이 지나 몰라 이제야 꺼낸 1월 13일 글이다. 그로부터 두달이란 세월이 지났고, 여전히 고군분투 육아가 쉽지 않지만 계속해서 대량의 배터리를 위해 나 좋아하는 일을 틈틈히 깨작거린다.


이전 09화 글을 쓰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