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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Feb 21. 2024

입속말


교사시절 예민한 여자아동들을 위한 반 규칙이 하나있었는데, 귓속말 금지였다.


친한 관계의 특권이랄까, 아이들 사이에서 별말이 아니여도 귓속말로 오고가는 것은 타 아이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넘어 질투를 유발하게 했다. 귓 속안에 전하는 말, 귓속말.


생각해보면 말을 전할 때 ‘어디 속’ 에서 발화된다는 게 신기하고 독특하다. 공중으로 퍼지지 않고 장소를 정해 그 속에서 발화되게 선택하는 것이 마치 선물포장 같기도, 본디 방법을 응용하는 퓨젼요리같기도 하다.




우리 조이는 요즘 옹알이를 하루종일 해댄다. 혀끝을 입천장에 붙여 딱딱 소리를 내더니 그러다 ㄹ발음을 터득했는지 ㄹ옹알이를 한다.


르으으르르르 로아아뢰롸-

뭐라고 하는걸까?


모자가 너무 크다고 말하는 것 같은 조이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없다면’ 안의 여러 단편소설중 아기의 뇌파를 따서 언어를 해석한다는 가정이 있었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 좋겠다 싶었다.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채 속에서 발화되는 말. 입속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고, 심지어 당사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를 옹알이. 그저 발음이 재밌어서, 입은 먹는 줄만 알았는데 스스로 소리가 내는 것이 재밌어서 하는 것일까.


입속말이란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그 단어를 보자마자 공중에서 흩어지기 전 그 조금만 입안에서 웅얼웅얼대던 조이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 나왔다.


언제쯤 너는 우리의 언어를 배워서 뜻을 알수있는 말을 해줄까. 그 때가 너무나 기다려지긴 하지만 지금 너의 언어를 입 속에서 소화시키듯 웅얼웅얼대는 너만의 세계를 지켜보는 재미도 잃고 싶진 않다.


8개월이 넘어 9개월로 향하는 너의 시간을 붙잡을순 없지만 하나의 빛나는 순간들을 조각 삼아 엄마의 땅에 적어둘게.


조이가 옹알이를 하는데 너무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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