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반전, 생각 없는 진실》 별책부록
왜 하이든일까 - 삶을 연주한 음악가
( Why Haydn - The Musician Who Played Life )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Portrait of Joseph Haydn (c.1792) by Thomas Hardy -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왜 하이든일까.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이자,
술 지급 조항이 명확히 기록된 대표적인 음악가였습니다.
매일 와인 또는 맥주 한 잔이 지급되던 그 계약은,
삶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그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의 악보에는 궁정의 건배 소리, 커피하우스의 대화,
그리고 인간의 일상이 함께 스며 있었지요.
그래서 이번 바리에이션의 첫 음은 삶의 리듬을 음악으로 바꿔낸 하이든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감싸 안는 교향곡의 소리를 선물한 음악가이며, 내 하루의 기록을 함께 기억할 선율의 공간을 열어준 작곡가이다.
술은 물이었다 - 생존의 음료, 이유 있는 반전
( Wine Was Water
- The Drink of Survival and Its Irony )
18세기 유럽에서 술은 물보다 더 안전한,
생존의 음료였어요.
상수도와 정수 기술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강물과 우물물은 언제나 오염과 전염병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식탁에도 술잔이 올랐지요.
물론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12~14도의 와인이나 5도 이상의 맥주가 아니라, 당시의 술은 훨씬 가벼웠습니다.
와인은 5~7도 전후, 맥주는 2~3도밖에 안 되는 ‘식탁용 술 (weak beer, light wine)’이었지요.
심지어 아이들까지 묽은 술을 나눠 마셨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정 악장으로 임명된
1761년 계약서에는 술 지급 조항이 정확히 명시돼 있습니다.
„täglich eine Maß Wein oder Bier“
(매일 와인 또는 맥주 한 잔을 지급한다.)
그 시대의 식탁은 빵과 고기, 그리고 술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하이든 친필 서한
(Autograph Manuscript), Courtesy of kotte-autographs.com
하이든이 직접 쓴 문서.
당시의 계약 조항이 단순한 행정 문서가 아닌,
시대의 일상과 음악가의 삶이 스며 있던 기록임을 보여준다.
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그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
오히려 현명한 계약 조항이었겠지요.
물이 위험이던 시대,
술은 생명을 지키는 또 하나의 물이었습니다.
Albert Christoph Dies,
『Biographische Nachrichten von Joseph Haydn』
(Wien: Camesinaische Buchhandlung, 1810)
화가이자 전기 작가였던 디스가 하이든의 생전 구술을 토대로 기록한 가장 초기의 전기.
출처: lubranomusic.com – Public Listing Image
이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대의 진실, 이유 있는 반전이 아닐까요.
그런 일상 때문에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Father of the Symphony)’ 이자 때로는 ‘궁정 술자리의 음악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Archival Sources
- J. Cuthbert Hadden, Haydn (Project Gutenberg);
Library of Wellesley College Collection.
하이든 전기의 초기 판본과 소장 기록을 함께 보여주는 참고 문헌 이미지 세트.
커피하우스 - 순도의 증명과 안도의 공간
( The Coffeehouse
- Proof of Purity and Shelter of the Mind )
하지만, 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빈(Vienna)에는 이미 커피하우스(Coffeehouse)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지요.
커피와 함께
애플 스트루델(Apple Strudel),
밀크 크림 슈트뤼델(Milchrahmstrudel),
린저 토르테(Linzer Torte) 같은 달콤한 페이스트리와 타르트가 곁들여졌습니다.
빈의 커피하우스를 물들인 세 가지 달콤한 디저트
:왼쪽부터 린저 토르테 · 밀크 크림 슈트뤼델 · 애플 슈트뤼델
왼쪽 : 린츠의 이름에서 태어난 린저 토르테
( 아몬드와 잼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도시 디저트,
달콤함 속에 시간을 녹여낸 오스트리아의 이야기 )
가운데 : 밀크 크림 슈트뤼델
( 부드러운 우유 크림 속에 숨은 오스트리아의 정성 )
오른쪽 카페 슈페를의 애플 슈트뤼델
( 18세기 빈의 오후를 지금까지 데려온 달콤한 향기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C BY-SA 3.0
게다가 빈 커피하우스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반드시 맑은 물 한 잔이 따라옵니다.
손님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 커피는 불순물이 없다’는 ‘순도의 증명(proof of purity)’이었지요.
오늘날까지도 빈 커피하우스에 가면
작은 잔 옆에 물컵이 놓여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커피는 물을 끓여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니 불안전한 생수를 그대로 마시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전했을 거예요.
어쩌면 사람들은 맛과 향만이 아니라
그런 안도감을 찾으러 커피하우스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토론을 이어가던 그 공간은 시대의 위생 현실까지 품은 사회적 안식처였던 셈이지요.
얼굴 없는 초상 - 하이든의 결혼
( The Faceless Portrait - Haydn’s Marriage )
하이든은 1760년에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 1729~1800)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마음을 두었던 이는 그녀의 여동생, 테레지아 (Maria Theresia Keller, 1733 경 ~? )였어요.
하지만 테레지아는 수녀원에 들어갔고,
결국 언니와의 결혼이 성사되었습니다.
출발부터 애정이 없는 혼인이었지요.
마리아 안나는 하이든의 음악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남편의 악보를
주방의 냄비 받침으로 썼다는
웃픈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이든의 편지에는
그 실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나의 아내는 나의 음악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Joseph Haydn, Letter to a friend, late 1770s
가정에서 얻지 못한 정서적 교감은
궁정의 연회와 술자리로 옮겨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이든에게 술잔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공허한 식탁을 대신 채워준 사회적 위안이었겠지요.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안나 켈러(Maria Anna Keller)와
하이든의 뮤즈이자, 진정한 정서적 동반자로 알려진 여인,
레베카 슈뢰터(Rebecca Schroeter, 1751~1816)를
주제로 한 전시.
Haydn und die Frauen (하이든과 여인들),
아이젠슈타트 하이든 하우스.
Exhibition View
“Haydn und die Frauen (Haydn and the Women)”
Haydn-Haus Eisenstadt.
Reconstructed gown of Maria Anna Theresia Keller (Haydn’s wife)
© 55 Plus Magazin / Courtesy of Haydn-Haus Eisenstadt
초상이 남지 않은 그녀의 자리는
아이젠슈타트 하이든 하우스(Haydn-Haus Eisenstadt)에서 이렇게 복원된 드레스의 형태로만 남았습니다.
얼굴 없는 마네킹의 고요한 실루엣은,
하이든의 결혼생활을 말보다 깊이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린저 토르테와 아몬드 - 달콤한 반전의 역사
( Linzer Torte and Almond
- A Sweet Paradox of History )
하이든이 살던 빈의 커피하우스에는
커피와 함께 늘 달콤한 페이스트리가 곁들여졌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린저 토르테(Linzer Torte) 였지요.
오스트리아 린츠(Linz)의 이름을 딴 이 디저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케이크 레시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격자무늬 반죽 속에는 빨간 잼과 고소한 아몬드(almond),
헤이즐넛(hazelnut)이 들어 있었고,
그 향은 귀족적 풍요와 도시의 자부심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몬드라는 열매 자체가 참 신기합니다.
아몬드의 봄 — 껍질 속에서 피어난 생명의 노래
왼쪽부터: 나무, 꽃, 그리고 열매.
딱딱한 껍질 속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처럼,
인간의 호기심도 언제나 따뜻한 빛을 향해 자라난다.
(Public Domain Images)
아몬드꽃은 가까이선 하얗고, 멀리선 분홍빛으로 보인다.
순도와 생명, 두 빛의 경계를 품은 봄의 얼굴.
아몬드꽃(Prunus dulcis)은
실제로 꽃잎이 흰색 또는 아주 연한 분홍색이에요.
이때, 꽃 중심부(수술 주위)가 짙은 자주빛·분홍빛을 띠기 때문에 햇빛 아래,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은은한 분홍색으로 보이지요.
그리고, 딱딱한 껍질 안에 감춰진 작은 씨앗을 처음 발견해 먹기 시작한 순간을 상상하면, 인간의 호기심과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몬드를 곱게 갈아 만든 아몬드 밀크를 단식기의 영양식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귀한 약재이자 사치품이었던 셈이지요.
아몬드 밀크가 한때는 귀족의 사치품이자 건강음료로 여겨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레르기(allergy)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과 호흡곤란으로 고통 속에 스러져간 생명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1906년,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 클레멘스 폰 피르케(Clemens von Pirquet) 가 처음으로 ‘알레르기’라는 개념을
제시하기 전까지는요.
No Other Choice - 사랑, 이해, 그리고 작은 배려 (Love, Understanding, and Gentle Care )
요즘 우리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얼굴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구성도, 문화의 결도 다양해졌어요.
친절이라고 건넨 작은 간식이,
다른 누군가에겐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길에서 마주한 장면입니다.
누군가가 길고양이들에게 먹고 있던 과자를 나눠주고 있었어요.
배고픈 아이들은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No Other Choice.
다른 선택지가 없었겠지요.
먹지 않으면 굶주림이,
먹으면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단지 살아보려 했을 뿐이니까요.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단순히 한 공간에 있다고 해서,
오래 함께 있었다 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지요.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것이 느릴지라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힘들지언정,
그 성실한 노력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꿉니다.
사치의 상징이던 열매가,
오늘날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시대는 언제나 같은 것을 두고도,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Epilogue - 삶의 결, 조용한 진심의 리듬으로 남다
( Epilogue - The Subtle Rhythm of a Sincere Life )
하이든의 식탁 위에는
늘 술과 빵, 커피와 디저트가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 식탁에는 결핍과 위로받고 싶었던 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었던
음악이 함께 놓여 있었을 듯합니다.
그의 음악은 삶을 지탱한 깊은 진심의 리듬이었지요.
예술의 양분으로 일구어낸 그의 삶의 결 ~
어쩌면 음악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작은 배려이자
조용한 축배였는지도 모릅니다.
Still Life with a Violin, a Recorder, Books, and Sheet Music
Jean-Baptiste Oudry (1686–1755) · Public Domain
악기와 악보, 과일이 한자리에 놓인 정물.
음악과 삶이 남긴 잔잔한 여운…
하이든의 식탁 위에 놓인 또 다른 풍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