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연민이다

닫히지 않은 문과 펴진 책 한 권

by 이정민 Ophelia


닫힌 문 사이로 스며든 빛 한 줄기처럼,

예술은 우리의 가슴에서 자라나는 사유 한 줄이었다.



전쟁터에도 음악은 흐른다.

포탄이 떨어지는 밤, 누군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악의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는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피아니스트다.

전쟁과는 멀리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한국은 지금도 전쟁 중이지 않나요?”


그 질문은 내 마음 한가운데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음악은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건, 언제나 음악이었다.


1941년, 나치의 포위 속에 봉쇄된 레닌그라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7번을 작곡했다.


불꽃이 튀는 거리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하며 떠올린 악상,

앙상히 뼈만 남은 단원들이 연주한 그 곡.

시민들은 벨트를 끓여 먹고,

굶어가면서도 연주회를 열었다.


책을 펼쳐둔 채 굶어 죽은 사람들.

닫히지 않은 문과 펴진 책.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인간다움의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말했다.


“창조적인 예술가는

그 전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만든다.”


그 말은 내 삶을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다음 연주를,

다음 글을,

다음 삶을 향해 나는 오늘도 손끝을 움직인다.


어쩌면 음악은,

세상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기록하는

가장 조용한 연대기일지도 모른다.


그 침묵의 깊이만큼,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연민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듣는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며, 귀를 빌려주는 것은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연주를 조용히 듣는다는 것,

그 침묵의 공간에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


어쩌면 음악은,

그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받아들이는 연민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고통에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펼쳐진 책처럼

닫히지 않은 문처럼

나의 음악과 글을 세상에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