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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y 14. 2022

이봐요, 당신이 왜 내 차에?

낯선 남자분 자동차에 올라탄 사연

2년 전 일이다.


목적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남편과 둘이서 차를 타고 어딘가 가기로 했었던 것 같다.


당시 살던 집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2~3분 먼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고,  난 필요한 짐을 챙겨 뒤따라 나섰다.


그 집에서 6년을 살았기에 차가 올라오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은 날로 예리해져 갔다. 공동현관문을 열자마자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차의 8할은 우리 차였다.


그날 역시 문을 나서자마자 우리 차가 나타났다. '역시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텔레파시가 있는 게 분명해.'


언제나처럼 차는 공동현관 앞에 멈췄고,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차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늘 내가 안전띠를 메기 시작하면 출발했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응? 왜 안가?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마치 대낮에 먹구름이 몰려와 어둠이 짙게 깔리는 느낌이었다. 싸했다.


남편은 분명 흰 모자에 흰 마스크를 끼고 나간 것 같은데,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검정 모자에 검정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2초쯤 후,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세로 길이 약 5센티 미터의 중안부 일부가, 정확히는 눈매와 코 시작점의 모양새가 내 남편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어둑어둑했던 시야가 새하얘졌다. 낯선 중안부의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료하고 정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분 역시 너무 당황한 눈빛이었다.


둘 다 놀란 나머지, 응당 나왔어야 할 이런 반응이나 말조차 하지 못했다.


'저기, 차를 잘못 타신 것 같은데요?'

'아구구, 죄송합니다.'


다시 약 2초간의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이제야 우리 차가 주차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차번호를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우리 차는 낯선 중안부의 남자 차량 뒤에 멈췄고 조수석에 올라타니, 운전석에는 익숙한 중안부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흰 모자, 흰 마스크 맞네."

"뭔 소리?"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남편이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 봐봐, 차 색깔이 완전 달라. 큰일 날 여자네."

허걱! 다시 보니 컬러도 차종도 다른 차량이었다.


직감과 감각만 믿고 타이밍 기가 막히다며 무작정 올라탔던 것이다.


그제야 창피, 민망, 부끄러움, 수치라는 온갖 단어들로 머리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우, 오며 가며 그분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ㅜㅜ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로부터 1달 후, 우린 다른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부끄러워서 야반도주 한건 결코 아니다. 마침 이사 갈 예정이었던 것.


그리고 이사한 곳은 감사하게도 지하주차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로써, 또 다른 낯선 남자 차에 함부로 올라탈 일이 없어진거 맞겠지?


덧) 그날, 큰일 날 여자때문에 본의 아니게 당황하셨던 그 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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