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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r 14. 2022

동상이몽 말고, 이상동몽

한 이불 안 덮어도, 같은 꿈을 꿉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함께 사는 배우자 또한 그렇다.


결혼 초기 우리 갈등의 시발점은 종교와 야구였다. 종교는 그렇다 쳐도 야구는 왜냐고? 한길 남편 속은 모르겠던 시절이었으니 알 길이 없었다.


각자의 팀을 응원한 지 수 십 년 되다 보니 서로의 팀으로 포섭하는 건 종교를 바꾸는 것과 같았다(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아빠가 물려주신 팀이다).


두 팀이 맞붙는 날은 온 집안에 살벌한 기운이 돌았다. 서로 맞붙지 않아도 순위 경쟁을 할 때면 다시 또 찬바람이 불었다. 야구는 따뜻한 계절에 하는 스포츠인데,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은 겨울이었다.




몇번의 계절이 바꾸고 주름살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야구팀에 집착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혼 연차가 쌓이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졌고, 에너지를 분산해야 했다. 야구팀으로 싸우는 것도 혈기 왕성한 30대라야 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40대가 되면서 우리 부부는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현재와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미래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동상이몽은 걸림돌일 뿐이라는 것을.


더 많은 대화와 이해를 기반으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서로 밀고 끌면서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방향이 달라버리면 방향을 맞추는 데에만 쓸데없는 노력이 소모되고 일의 해결은 요원해질 수 있기에, 내 의견이, 내 야구팀만이 최고라고 우기는 건 우매한 일이 되었다.


둘다 급격히 신체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도 알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밤새워 술을 마실 수 없고, 어제 힘들게 굴렀으면 오늘은 쉬엄쉬엄 해야 내일 다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어느덧 흰머리가 많아졌고, 머리가 빠지고 있으며, 눈도 침침해진 것 같다. 상처 난 부위는 지극 정성으로 약을 발라도 이젠 쉽게 낫지 않는다며 자조섞인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미래의 꿈도 공유한다. 앞으로 배우고 싶거나 함께 해보고 싶은 것,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낭만 찬란 프로젝트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아무 말 대잔치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나는 꿈꾸는 건 자유라는 마음으로, 둘째가 성인이 되는 50살에 영어권으로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자, 함께 따라나서겠다 한다. 그래 같이 가볼까?


각자의 공간과 쉼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남편은 마루에서 영상을 보고 나는 식탁에 앉아 글을 써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굳이 묻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 아무나 먼저 일어나서, 간식을 꺼내 접시에 담아 가져다준다.




아침은 상대방의 컨디션을 묻는 말로 시작한다.


"잘 잤어?"

사탕과 버터를 섞은 느끼 달달 버전 아님 주의. 실로 생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이다.


상대방이 잘 잤다는 건 그 사람의 오늘 컨디션이 양호하고, 아침 기분이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서로 수면 시간이나 질을 공유하여 상대방에게 내 상태를 알려준다. 둘 중 한 사람이 잠을 설친 날이면, 좀 더 컨디션이 좋은 사람이 설거지를 해주거나 집안일을 더 거든다. 그래야 그날 하루 톱니바퀴가 잘 굴러간다. 함께 살아가면서 체득한 본능적인 깨달음에 가까운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서로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동상 원칙을 과감히 버렸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싸우더라도 꼭 한 이불 덮고 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지만, 한 이불 덮고 자다가 잠 못 들고 예민해져 싸울 것 같아 선택한 것이니 부디 혜량 해주시길.


수면 장애가 있고 추위를 못 참는 나와, 가끔 코를 골고 더위를 못 참는 남편의 환장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각자 쾌적하게 자신의 수면습관에 맞춰 잠을 잔다. 그리고 늘 같은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잘 잤어?"


서로를 위하여 한길 사람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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