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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y 15. 2022

변화의지가 없는 40대 이상은 다 집으로 가야합니다?!

어느 날 회식 중, 임원이 쏘아 올린 말

변화의지가 없는 40대 이상은
다 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나만이 유일한 40대 평직원이었다.


절로 시선이 떨구어졌다.


그의 생각 속에서 나는 변화의지가 있는 사람일까?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충동적으로 옷을 사는 습관을 멈췄다. 작은 성취와 시간 통제의 자유를 발견했고, 공간과 소비에 대한 관념이 미니멀해졌으며, 복잡하고 부수적인 인간관계는 과감히 삭제시켰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더욱 집중하고 있다. 요가와 명상의 도움도 받았다. 도전에 대한 용기를 얻기 위해 자전거도 다시 배웠다.


이렇듯 나는 변화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직장 안에서의 나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현실에 쉽게 만족하고, 귀찮아서 안주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변화가 "그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구미에 맞는 결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화의지가 없는 사람은 한마디로 "관리자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인 것이다.


직원 밥그릇과 챗바퀴에 대한 통제권은 관리자인 본인에게 있는 것인데, 말 안들을 거면 집에나 가리는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으니 저리도 고오급 지게 이야기 하나보다.


그리고 굳이 나이를 나누는 이유는 40이라는 숫자가 꽤나 상징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30대 최연소 임원, 30대 이하 직원들로만 구성된 젊은 조직, 30대 팀장으로 물갈이 등등 확실히 30대는 활력 넘치는 나이로 인식된다. 경험치도 쌓이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지면서 민첩하게 손과 발이 되어주기에 딱 좋은 나이로 보인다.


반면, 40대는 여전히 젊음이라 하기엔 애매하다. 경험이 넘쳐나 배테랑이라는 칭호가 붙고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맷집도 강해진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만큼 자신이 성공해온 방식을 고수하기도 하고, 연륜에 비례해 기민함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역시 30대와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는" 사회적 통념이겠지만.


그리고 가장 핵심은,  40대에는 평직원과 관리자의 나이가 역전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부하였던 직원이 상사가 되기도 하고, 한참 어린 사람이 고위 관리자로 영입되기도 한다. 팽팽한 신경전이 전개되는 경우도 왕왕 있기에 관리하기 껄끄러운 대상의 비율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서) 조직의 성장을 위시한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진심으로 변화의지를 기준으로 필터링하고자 한다면, 나이 조건 없이 "변화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안 되는 걸까?


혹은 변화의지로 시니어들의 존속 가능성을 판단하기 전에, 이들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했는지 자문해주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변화하고자 하나 그동안 해오지 않은 방법이라서,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서 지레 겁을 먹고 옛것을 고수하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변화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에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으나, 성공이라는 결과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이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나이를 기준으로 성패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면, 용기를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가마니처럼 쨉과 스트레이트, 훅까지 모진 공격을 받더라도 버티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할 수 있기에.


만약 변화의지는 있으나 나이를 기준으로 실패할 기회를 받지 못하는 직장인이라면, 그 의지를 회사의 발전만을 위해 사용하지는 않길 바란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 애써봤자, 회사는 계속해서 다음 변화, 더 나은 결과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두 번 성공하더라도, 그 과정들은 연속 혹은 누적이 아닌, 매번 새로고침 될 것이다.


그러니 집에나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집에 가보자. 내 마음의 집으로.


실패할 용기가 있다면 차라리 제 발로 뛰쳐나오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스스로 찾고, 변화를 결정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집에 가라는 말은 불행의 시작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진짜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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