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불처럼 진심으로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좋겠어
좋은 사람 사랑했었다면 헤어져도 슬픈 게 아니야
좋은 사람은 소개도 잘 받고 사랑했다면 좋은 추억으로도 남는다.
나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아내였으면 좋겠고, 인간관계 면에서도 좋은 친구나 좋은 동료로 남길 원한다. 하지만 애쓰지는 않는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한테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다. 상대방의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좋아하는 깜짝 선물도 보낸다. 때로는 슬픈 얼굴에 먼저 다가가 위로를 건넨다.
대부분은 별다른 노력 없이 그저 자연스럽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한 이후 회사에서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은 멈췄다. 동료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아버린 것 같다. 마침 유일하게 존경하던 상사가 조직을 떠난 후 직속 상사와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그가 원하는 인력들로 팀이 재편된 상황과도 맞물렸다. 특히 상사가 원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마음에 화가 쌓이며 딸꾹질을 일으켰다.
반항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사내 정치의 핵심들에게 애써 웃으며 "당신들이 최고"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는 싫었다.
내가 승진, 커리어, 보상 등을 원했다면 상사가 나를 좋게 여기도록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랬던 시절들도 있었다. 썩을 대로 썩어 버린 시궁창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독기를 품은 적도 있으며, 죽기 살기로 기회를 엿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사에게 다가가고 인정받기 위해 나를 지키는 성벽을 허무는 순간, 그들은 그 안으로 훅 들어와서는 내 시간, 내 자유, 내 성질까지 통제하려 했다.
Round 1 > Round 2 > Round 3
점점 요구 레벨이 높아진다.
도대체 Final Round는 언제 나오는 건데?!!!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나는 능력치가 그저 그런데다 Yes맨은 성질이 나서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상사가 원하는 "좋은 사람"에는 자질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눈치나 촉은 더럽게 빨라서 상사들의 의도를 재빨리 알아채곤 했다. 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 가능한 일을 맡기는 것인지, 전시용 보고를 위한 1회용인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내 시간을 빌려 자신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싶은 것인지, 내 충성심과 인내심을 테스트하겠다는 뜻인지 등등을 말이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써먹기 좋은 사람일 뿐, 그들이 밀고 당겨줄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며 나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들의 구미에 맞는 좋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오래도록 좋은 상사로 기억되는 분들은 누구보다 성실했고 방법 또한 효과적이었으며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었다. 솔선수범의 의미를 이해하신 듯했다.
자연스럽게 믿고 따르게 되었고, 그들도 나를 신뢰했다. 어떤 이는 내가 사고 쳤을 때 괜찮다고 너라도 밥 먹고 오라 했다. 또 다른 이는 내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80% 밖에 완성을 못했다고 하자, 본인이 20% 채우면 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분들과 일할 땐 120% 오버페이스로 일해도 괜찮았다.
성과를 위해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승진하시면 함께 기뻐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전해졌다.
그들의 리더십 또한 인간적이었다. 직원이 노는 꼴을 못 보는 못된 이들과 달리, 한숨 돌릴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을 용인해주었다. 바쁘고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성질을 부려도 온화하게 받아 주셨다. 주변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픔에도 관심을 두셨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갑-을, 상사-부하, 통제-비통제 등 기계적인 비즈니스가 아닌 인간적인 비즈니스 관계였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번 보고 잘 마치면 맥주 한잔 살게
기계적 비즈니스 관계 중심의 상사들이 이렇게 말할 때 열에 아홉은 빈말로 흘려보냈던 것 같다.
본인의 계획대로 지금 당장 일하도록 만드는 "태엽 감기"의 일종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사 문구 주의!
#맥주한잔빚졌다 #밥한번먹자 #커피한잔쏠게 #네가우리팀에이스야
"이거 해주면, 저거 해준다"는 조건부적인 제안에는 "지금 당장. 건강하게. 제대로" 일해 달라는 요구가 숨어 있었다. 실제로 저렇게 말해놓고 맥주를 산 상사는거의 없었다. 설령 진짜로 맥주 한잔 한다고 해도 훈훈한 관계는 그때 잠시 뿐, 술이 깨면 그들도 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 같다.
기계적 비즈니스 관계 중심의 상사들은 동료나 직원들의 기쁨이나 슬픔에도 공감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오로지 일과 성과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 중인 직원에게 당연하다는 듯 업무 follow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고, 내 경우에는 조모 상중에도 디렉션이 있어 노트북을 켜놓고 일을 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병이 찾아와 수술을 하고 장기 휴가에 다녀온 직원에게 몸이 괜찮냐는 진심 어린 걱정 한마디 없이 바로 과중한 업무를 넘기면서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사례도 목격했다.
이전에 너무 좋은 상사들을 많이 만나며 좋은 운을 다 써버린 탓인지, 퇴직 직전에 만난 상사들은 대부분 이런 유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문을 닫고 내 안의 성을 단단히 지키는 것뿐이었다. 조건부 제안에 속지 않도록 중심을 지키고, 덩실덩실 장단에 맞춰 춤추지도 말고, 야근과 주말을써가며 페이스 올리지 않은 채, 내 속도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퇴사 이후의 생활을 준비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년에 이런 상사들을 만난 것이 인생에서는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커리어나 직장 내 위치를 자각하고, 자유와 해방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줬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100% 좋은 것도, 100% 나쁜 것도 없는 법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