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라미 Nov 27. 2022

아직은 젊다고 우기는 중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닥치고 해 보자

"오늘은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꽃 스케치 스케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슥슥, 미끄러지듯 연필을 움직여본다. 유튜브 강좌 속 그림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꽃이 되어 가는 양상에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개로 벅벅 지워댄다.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그림 실력을 마주하고는 "이 나이에 굳이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냐?"라며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하다가도, 이제 막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니까 못 그리는 게 당연하다는 뻔뻔함 두르고는 다시 한번 연필을 쥐어본다.



최근 시작한 그림 수업 첫날. 서먹서먹한 순간도 잠시, 한 여사님의 흰머리 고민을 시작으로 선배님들은(나보다 나이가 많은 시니어분들은 모두 선배님이라 부르고자 한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 이상이 한 번에 입을 열면 얼마나 소리가 증폭될 수 있는지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도 갑자기 높아진 데시벨에 깜짝 놀라셨는지 "우리 회원님들 조용히 하고 그림에 집중하셔야지요." 라며 애교 섞인 말투로 자중시킬 정도였으니.


선생님의 호통 하나에 숨소리와 연필 소리, 그리고 붓으로 물통을 휘젓는 소리가 교실을 채워갔다.

그러나 고요함과 평화로움도 이내 사라진다. 옆에 앉은 선배님이 불쑥 내게 말을 걸어 오신 것.


"나는 이제 환갑인데. 자기는 몇 살이야? 젊어서 부러워..."


순간 일동의 시선은 우리 둘을 향한다. 아마도 적막을 깬 뜬금 질문에 대한 반가움, 호탕하게 나이 커밍아웃을 하신 그분의 용기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내 나이가 궁금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  40대 중반이에요."


웃음으로만 때우고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하여, 수줍게나마 답을 해드렸다. 참고로 나는 낯가림이 심한 극 내향인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진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쉽게 말을 걸지 못하며, 왁자지껄한 것보다는 조용한 환경에 편안함을 느끼는 유형.


"와! 좋을 때네."

"젊다. 그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배워야 더 빨리 늘어."


또다시 봇물 터지듯 반응이 이어진다. 그새 익숙해진 것일까 시끌시끌한데 한편으로는 활기가 넘쳐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예술 행위가 곁들여진 대화이기 때문인지, 혹은 그토록 열망하던 그림을 배우게 되어 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인지 불편한 자극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어왔다. 아마도 멋지게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글쓰기처럼 나와 잘 놀 수 있는 취미로서도 좋을 듯했다.


회사에서 중견이라는 이름으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다 광야로 나오니 귀여운 병아리가 되었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망설임은 나이만 먹게 할 뿐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닥치고 다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