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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Nov 15. 2022

퇴사 후, 작고 귀여운 돈벌이의 시작

작은 성취의 반복, 병아리 플랫폼 노동자

퇴사 이후 처음으로 소득을 얻었다. 누군가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시시한 금액일 수도 있다. 혹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외식 몇 번만 하면 다 써버릴 수 있는 허무한 노동의 대가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찮다. 하지만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적어도 내 눈에는 회사 월급보다도 영롱하게 빛나니까 (정신 승리로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상징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완전하지도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시도했으며 운 좋게도 이른 성취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종의 작은 성공이라 일컬을 수 있을 듯하다.


사실 당초 타깃으로 생각했던 것은 중학생 기초 학습 및 성적 향상을 위한 과외였기에, 초등학생 오퍼가 들어왔을 때 조금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로 결심했다.

음 도전인 만큼 부담 없이 시도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준비에 품이나 에너지가 들지 않고 당장은 평가나 확인 가능한 목표를 잡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었다. 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실행할 수 있다. 심지어 형제 두 명을 가르치니 한번 방문으로 1타 2피의 쌍끌이도 가능하지 않은가? 이런 기회가 있음에 감사한다.


엑셀, PPT, 실무 지식 등 사무실에서 쓰던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자체가 시사하는 바도 크다. 이직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 밖의 다른 능력이나 재능, 혹은 노력을 활용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Tool로서의 엑셀이나 PPT가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수십 년간 잘 갈고닦아 온 만큼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흐름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지와 실행력이 합쳐져 빚어낸 결과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성취해보는 자유를 조금은 맛본 것 같다. 처음 방향과는 조금 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이 경험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지, 무엇을 위한 레퍼런스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끊임없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해진 목표나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방법일 것 같다. 점들을 계속 찍으면서 외연을 확장해야 연결될 확률도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더 많은 기회와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며,  결과로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을 활용해 나를 어필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학습 지도를 한다는 것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브랜드도 없이 말이다!) 분명 무모하고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맨땅에 헤딩이든 삽질이든 "시작했다"는 자체는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음을,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냈음을, 무엇보다 미래를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뛰어넘고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다른 기회나 도전에 대해 망설이지 않는 용기를 주고 있다.


작은 성공 하나를 성취하면, 그다음 작은 성공을 얻기 위한 태도가 저절로 갖춰진다.
여기에서 결과는 직접 손으로 만지거나 남들에게 보이거나 비교해볼 수 있는 것처럼 확인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각각의 작은 성공은 현실을 바꾸어 놓는다. 작은 성공은 끊임없는 흐름을 일으킨다.
- 빠르게 실패하기


 '빠르게 실패하기'에서 언급된 "그다음 작은 성공을 얻기 위한 태도"가 조금씩 갖춰진 덕분일까? 그 사이에 오퍼가 들어와 주저 없이 거래를 체결하고 바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원래 대상으로 했던 중학생이다. 이미 스타트를 끊어서 인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마도 예전의 나였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그 목적이 커리어나 돈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과 재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고, 흥미롭게 진행하여 아이들이 나와 함께 즐겁게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비록 실패로 끝나더라도 나에게는 귀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일을 계속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참고로서의 활용 가치도 있다.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더군다나 회사 노트북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던 월급쟁이가, 불과 세 달만에 2023년의 직업 및 노동 시장 트렌드로 일컬어지는 "오피스 빅뱅, 탈오피스, 탈제도권, 플랫폼 노동자 증가"의 물결에 동참하게 되었다니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파도가 나를 덮칠까 봐 도망만 다니던 사람이 언제든  파도에 올라탈 준비를 하게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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