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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Aug 30. 2023

비정규직에 단시간으로 재택근무합니다

다시 직장인으로... 근데 이거 직장인 맞나요?

비정규직 & 단시간 근로자 & 재택근무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회사 다녀요"라고 대답하긴 애매하다.

집순이에 소심녀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가 드문 만큼 물어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사실 하나씩 떼 놓고 보면 그다지 특이한 형태는 아닐 것이다.


이미 보편화된 비정규직은 그 비율이 30%를 넘어선 지 오래고, 단시간 근로자는 최근에 많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이며, 재택근무는 코로나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본 근무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모두 짬뽕한 사례는 최소한 내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와 같은 하이브리드 방식을 경험했을지 모르겠지만, 정규직&풀타임&출근이야 말로 직장인의 정석이요 미덕이라 믿어왔던 나 같은 "곽막희씨"에게는 낯설고도 신선한 경험이 되고 있다.


올봄, 

예전 회사에서 연락이 와 입사를 조율하던 때, 마치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선택하 듯, 계약 형태, 근무 시간, 근무 장소 등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하나씩 쏙쏙 골라 담았더니 이런 모양새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나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걸 보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윈윈이려나?)


지난해 여름,

더 이상 조직 생활을 하지 않겠노라며 사직서를 던지고, 아니, 솔직히 던지지는 못했다(거짓말 못하는 타입). 매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퇴사 의사를 전했으며,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도 모른다는 "인생은 회전목마" 지론에 입각해 마지막까지 성심껏 인수인계를 하고 왔으니까.


어찌 되었든 (마음속으로나마) 사직서를 날려버리고 퇴사한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회사 안은 정글이지만 나오면 지옥이라는 말처럼 울타리 밖이 지옥이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정글 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큼의 지옥은 아니다. 물론 지옥 같은 상황도 있지만, 주옥같은 경험도 분명 존재한다. 이거 너무 좋은데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 딱 그거다.


회사라는 공간이 숨이 막힌 나머지 책상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목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기에 퇴사를 결심한 것이고, 그 배경에는 층층이 쌓인 위계질서 속에서 말단 하층민으로서 윗 단의 고귀한 분들을 등에 업고 달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한 마디로 사장 밑에 임원진 그 밑에 부장/팀장 그 밑에 팀원이 있으며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해야 하는 곳(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것으로 내가 지금 회사에서 계약직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히 비즈니스적 거리를 둘 수 있어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계약된 업무만 진행하면 되기에 적절히 압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하겠다면 만료 후 언제든 홀연히 떠나면 된다.


풀타임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이리저리 기웃대는 걸 즐기는 성향 상 6시까지 근무할 경우 개인의 삶에 위해 투자할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손도 느리고 몸도 굼뜬 내가 풀타임 근무 후 아이들과 강아지들 케어에 식사까지 챙기려면 솔직히 24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 지금은 늦어도 3시 이전에 업무를 마칠 수 있으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도서관에 갈 시간이 확보된다. 비움과 정리정돈을 실천하는 요즘은 이 시간에 집안을 쾌적하게 만드는 일에도 집중한다.


더욱이 평일 저녁에는 사이드 잡을 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남편 매장을 도울 일도 빈번하기 때문에 지금의 업무량이 딱 좋다.


재택근무는 업무 특성상 대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선택이 가능했다.



이렇다 보니 급여 수준은 예전의 60%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퇴사 후 0%도 경험해 봤기 때문에 60% 정도면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100%라면 더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겠지만,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그만큼 쏟아붓는 것보다는 덜 사용하고 덜 받는 구조가 지금의 나에게 맞아떨어지는 생활이다.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형태이기에 다시 0%으로 돌아가는 삶을 배제할 수는 없다. 돌아간다면 긴축 재정에 돌입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퇴사 후 백수 기간 동안 나는 마냥 놀고만 있는 부류는 아니었다. 자격증을 비롯한 무언가에 계속 도전했고 작은 돈벌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덕분에 나라는 사람을 믿게 되었다. 따라서 다시 ZERO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주 두렵지는 않다.


물론, 비정규직/단시간/재택근무의 형태가 정규직/풀타임/출근형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용의 안정이 보장되고, 복지 제도를 누릴 수 있으며,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반적인 K-직장인 시절"이 가끔은 그립거나 아쉬울 때가 있으니까(후회랑은 다른 개념).


다만,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의 방향을 만들어간다.


20년에 걸친 직장인 시절을 반추해 보면 조직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 같다. "일"을 떠나서 출퇴근 자체로도 에너지가 소모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답답했으며, 현재 집중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 없는 연락이 오거나 상사가 수시로 불러대는 건 성가셨다. (좋아하지 않는) 동료와의 관계나 상사의 기분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정치질을 눈감아줘야 하는 것에도 지쳤던 것 같다.


따라서 나의 선택은 "머물고 싶지 않은 환경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반쪽짜리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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