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뒤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인생이 늘 앞뒤가 맞는 건 아니잖아요 (돈의 심리학 p196)
피식 웃어버렸다. 지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불과 몇 달 전에 다시 조직에서 일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4월 초, 예전 회사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지난해 퇴직한 회사는 아니다). 상사이긴 했지만 프로젝트 기반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에 매니징에 조금 더 특화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일반 기업의 디렉터와는 조금 개념이 다르고 외국계 기업의 매니저에 좀 더 가깝다. R&R이 매니징인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알바를 해줄 수 있냐고 제안하더니(내가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 이야기가 진전되자 사실 맡기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재입사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아니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가계부가 빵꾸 나기 시작해 적잖이 현타가 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돈이 필요했다.
이 와중에 우아하게 그림 교실에 다니고 공부를 좀 해보겠다며 매일 카페에 가서 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자니(도대체 왜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되는 건지) 남편에게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어디 가서 200만원만 벌어오면 딱 좋겠다고 하던 차였다(이 또한 귀하고 값진 돈이다. 명백히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조직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온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리 조금 다른 형태의 고용주-근로자 관계라 하더라도 어쨌든 내 시간을 내어주고 시키는 혹은 약속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망설여지는 이유는 또 있었다. 공부, 과외, 그림등 이것저것 벌려 놓은 상황인데 일까지 추가한다면왔다 갔다만 하다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아서다. 뭐 하나 진득이 하지 못하고 경로를 자꾸바꾸면서One Thing을 찾지 못한 채 계속흔들리는 내 꼴이 우스워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스프레드 시트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감정적인 사람이다]라고 돈의 심리학의 저자가 말하 듯, "그냥 적당히 합리적인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미래의 후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라고 여기며 나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 비록 좋아하지는 않아도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정규직에 단시간 재택근무 조건이기에 소득은 예전의 60%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덕분에 경제적인 위축감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기존 생활 패턴을 무너뜨리지 않는 일의 수위를 유지하는중이다.
돈과 에너지와 즐거움의 삼각 편대가 적정한 균형을 이루며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일상을 지탱해 주고 있다. 딱 내가 원했던 안정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