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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06. 2022

퇴사해서 좋은 점이 뭐냐면요

예민 보스의 before & after

"벌써 주말이네."


어조에서부터 주말을 향한 쿨함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느덧 주말이다.


주말에는 무조건 쉬어야한다는 강박은 사라진지 오래.


퇴사한 덕분에 매주 일요일 밤, 번번이 성급하게 찾아오는 월요병을 마주하며 "제발 빨리 주말이 되게 해 달라"라고 빌었던 히스테릭한 여인은 자취를 감췄다.


2일을 충전하여 5일을 살아내는 삶을 살았던 직장인 시절의 주말은 무조건 쉬어야 했다. 이틀의 자유가 너무나도 달콤하고 소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리거나 방해할 수 없도록 단단히 지켜내고 싶었다. 시간이 한 톨이라도 새어나갈까 봐, 구체적으로는 내가 소망하는 충전 방식 (나에게 스케줄을 맞춰달라고 가족들에게 요구하거나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일들은 일과에 넣지 않는 것)에서 어긋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3시부터 혼자 시간을 보낼 테니 방해하지 말아 줘."라고 요구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악한 보호색을 뗬던 것 같다. 특히 불면증이 극에 달했던 최근 3년 동안 주말의 최우선 순위는 주중에 대출한 잠 빚을 갚는 것이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으로 인해 쉬이 늦잠을 자지 못했다. 활력이 급감하는 오후 3시쯤을 낮잠 시간으로 설정했다.


그러다 아이들 중 하나가 엄마가 침대에 누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불쑥 방으로 들어온 다던지,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는 전화가 때마침 그때 온다던지 할 때면 괴물로 돌변하곤 했다. 사춘기 아이들도 두 손을 번쩍 들고 GG를 외칠 만큼 예민 노도의 시기였다.


지금은 주말에 못 쉬면 평일에 쉬어도 되고, 매일 충전해서 매일 사용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활동기와 충전기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얼핏 질서가 없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사물의 순서"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내가 혼란스럽지 않으면 되고, 일상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질서라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질서란 대충 그러한 방식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주말에 쉬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월요일 아침에도 너그러워졌다.


솔직히 월요일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날쯤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주말에는 일어나자마자 일기부터 쓴다면, 월요일에는 아이들 아침식사 준비와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준다. 안방 화장대에 앉아 일기장을 펼치느냐, 부엌에 서 있느냐 이 차이일 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나의 시간이기에(물론 강아지들은 언제나처럼 예기치 않은 사고를 저지르곤 한다) 먹던 자던 쓰던 싸던 오로지 내 자유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덕분에 월요일이 지나면 요일 개념이 희미해진다는 귀여운 부작용이 생겼지만.


또 하나는 의외로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는 점이다.


직장인 시절에는 친정 엄마가 집에 상주하시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아침밥이라는 걸 챙겨 먹고 출근한 기억이 없다. 항상 아이들 위주였고 내 뱃속은 뒷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점심을 푸짐하고 맛나게 먹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 "직장의 직장녀" 답게 뱃속이 늘 시끄러워서 회사에 있는 동안은 먹는 걸 최소화 했다. 나의 뱃속은 보고의 풍랑, 갑질의 풍랑, ASAP의 풍랑, 실적 가로채기의 풍랑을 만날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심히 요동치며 통증을 동반하고는 했다. 덕분에 책상 서랍 안은 미니 약국을 방불케 할 만큼 소화 기능 관련 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백수가 되니 나를 뒤흔드는 풍랑의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덕분에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듯 뱃속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요전번 심하게 장염 게 걸리긴 했으나 스스로 파도를 일으켜 배를 잡아먹으려 했던 강박의 결과였다. 균형점을 찾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어느 선까지가 무리이고 어디까지가 유리한 선인지 학습하는 시행착오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크게 앓고 크게 배웠다.


이 외에도 작고 아담한 변화로는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휴가를 써야 할 만큼 아플 때까지 참거나 주말까지 기다려서 병원을 방문하고는 했다. 덕분에 가치로운 주말의 충전시간이 줄어드는 참극을 낳았다. 쉴 수 있는 시간이 감소하는 만큼, 주말의 예민도는 더욱 상승했다.


이제는 평일 혼자 있는 시간에 언제든 갈 수 있게 되었기에 아픔에게 무리한 인내를 강요하지 않는다.


집안일 또한 남편이 제 몫을 안 했을 때 물고 뜯으며 잔소리를 해댔지만 지금은 공식적 활동이 없는 내가 하면 되니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화낼 일도 줄었다. 제 할 일을 못 챙기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에게도 대뜸 꾸중부터 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얼굴이 더 못 생겨지는 빈도수 또한 감소한 것 같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백한 단점은 월급이 반토막도 아닌 "무"가 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를 표현할 명함마저 사라졌기 때문일까 며칠 전 핸드폰을 구매하러 갔을 때 위축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준비 기간 동안 신중하게 생각해온 만큼 새삼스럽게 단점으로 거론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확실히 여유가 생겼어."


퇴사 후 한 달 여가 지난 시점에 남편이 스치듯 말했다. 무슨 대화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유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예민함이 줄어드니 그 자리에 여유라는 단어가 들어앉은 것이다.


바야흐로 예민 보스의 시대는 저물고 여유만만의 순풍이 불어오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처럼, 풍랑이 이는 시기가 언제 또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 이 평화로운 현재를 글로써 또렷이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타임캡슐처럼 지금 이 마음을 잘 보관해두었다가 여유의 마법이 필요한 순간에 꺼내 써야겠다.

한 줄 요약  : 퇴사하고 나니 예민 대신 여유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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