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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Feb 24. 2023

술집에서 넘어졌어요. 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당황, 신기함, 부끄러움, 뒤늦은 통증, 그리고 감사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오뎅바에 갔다.


옆으로 나란히 앉는 구조에 조금은 어른스러운 분위기 덕분인지, 대화도 잘 되고 힐링되는 기분이 들어서 자주 찾는 곳이다.


테이블이 붙어 있는 데다 옆자리에는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지만 희한하게도 단둘이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다닥다닥 앉아야 하니 둘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서로의 얼굴을 더 밀착한 상태에서 바라봐야 하기에 표정이며 말투까지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려나?


그날 대화의 주제는 다소 무거웠지만 공간이 주는 힘을 빌어 잘 풀어나갔다. 차분한 분위기가 담긴 술과 오뎅국물을 번갈아 홀짝였다. 뜨끈한 국물이 몸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마음까지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분위기 좋은 오뎅바가 있다니, 우린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

"응 정말 기분 좋아지는 곳이야."




때 마침 손님들이 조금씩 빠지면서 우리 부부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고즈넉한 분위기 마저 감돌았다. 종업원들은 비워진 테이블 앞 오뎅들을 모두 꺼내 오뎅기계 위 거치대에 올려놓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오뎅이 불어서 맛이 없어지지 않도록 해두는 노하우인 듯했다. 뜨거운 국물에서 떠오른 증기가 오뎅에 닿으면서 기체화된 물방울들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실내 공기는 한층 촉촉해졌다. 피어오르는 증기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 운치 있었다. 때 마침 세련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자리를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 역시 그랬는지 이내 술을 추가로 주문했다. 평소의 주량을 살짝 넘어가고 있었고, 시간 또한 그랬다.


나는 주로 맥주를 마시기 때문에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에 외부 사람들과 마실 때는 주량을 아끼고, 남편과 마실 때는 한 공간에서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나의 경험칙을 기반으로 2시간이 경과하는 시점은 화장실에 가줘야 하는 타이밍이며, 한번 가기 시작하면 연달아 몇 번씩 가게 되는데, 이 과정이 몹시도 귀찮기 때문이다. 이는 과음을 하지 않는 비결? 이기도 다.


하지만 이 날은 남편의 추가 주문으로 시간이 자동 연장되었기에 한번쯤은 체내에 흡수되지 않은 수분을 배출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뎅바의 유일한 단점은 화장실이 건물밖 외부에 있다는 점.


처음에는 참아볼까 싶었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애써 참다가 병이 나는 무식한 결말 (방광염에 자주 걸리는 타입) 또한 원치 않았다.


결국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귀찮다는 말을 5번쯤 연속으로 내뱉으며 후드집업을 걸쳐 입고 출입문을 나섰다. 순간 바깥바람이 생각보다 매서워서 잠바를 입고 나올까 싶기도 했지만, 거추장스러움이 더 싫었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다시 오뎅바로 돌아갈 때 역시 공기가 차가웠다. 뛰는 듯 걷는 듯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실내에 들어갔지만 아직 몸의 찬기가 가시지 않아 발을 계속 종종 거렸다. 그리고 자리에 거의 다다른 순간,



앞으로 꼬꾸라지며 넘어졌다.


어떤 순간에 어느 발이 먼저 미끄러진 건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나는 바닥에 자빠져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나의 낙법이 마치 플랭크 자세와 흡사했다는 사실이다.


지면에는 두 손바닥과 발끝만 닿아 있는 상태로, 몸은 신기하게도 꽤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넘어졌다는 것보다 안정적인 자세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도 안 아팠다는 것. 그 순간 남편이 내 몸을 일으켜주었다.


종업원들이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바닥에 왜 이렇게 미끄럽죠?"

"아, 지금 매장 내에 수증기가 많아져서 그런가 봐요. 죄송합니다"


그들은 출입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기 시작했다. 조금은 증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많이 아파?"

"아니 아까 봤잖아. 내 자세. 와 그 와중에 정말 유연하고 안정적이지 않았어?"


"푸하하하 그 순간에 그걸 생각했단 말이야?"

"응 플랭크 자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단 말이지."


나는 다시 어묵국물과 맥주를 번갈아 홀짝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후로 20~30분 정도 더 머물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다를 즈음 남편이 보조개를 실룩대며 물었다.


"있잖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술 취해서 넘어진 건 아니지?"

"아니야. 그 정도로 약하진 않아."


"근데 미끄러진 모양새가 꼭 술 취한 사람 같기도 해서..."

"취했다면 그렇게 완벽한 낙법을 구사할 수는 없었을 걸?"

"아하하 그러네!"


헌데, 그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완벽한 낙법에 심취해 있었던 반면,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자체에 주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까지 먹었으니 과음한 아줌마의 추태로 기억된다면? 게다가 단골 가게인데 와 이거 진짜 창피하다... 창피하다... 창피하다...


침대에 누워서도 미끌거리던 순간과 우스꽝스러운 플랭크 자세만 생각났다. 나는 오뎅바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이미 이불 속이었지만 깊은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미리 신청해 둔 요가원 수련을 취소했다. 잠에서 깸과 동시에 삼두박근 쪽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고 겨드랑이와 갈비뼈가 이어지는 근육 어딘가에서 뻐근함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요가 안 갔네."

"나 아무래도 담이 온 것 같아."

"푸하하하, 안 아프다 할 때부터 알아봤다. 우리도  40대야. 몸이 다치면 아픈 게 당연한 나이라고!!"


오후 쯤되자,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몸살 걸린 듯 아파서 자꾸만 눕고 싶어졌다.


이제  앞으로는 길 다닐 때도 보도블록 튀어나온 곳은 없는지. 미끄러울 만한 곳은 없는지, 그 밖에 위험 요소는 없는지 잘 살펴봐야겠구나. 나이 먹고 넘어지면 2박 3일 동안 앓기도 한다던데 심지어 뼈도 쉽게 부러진다는데 정말 남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여전히 근육들이 조금 아프지만, 상처 하나 없이 이 정도라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조심할게요!

나이를 잊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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