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퇴사를 결심하면서 요동치고 동요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 싶다는 열망.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처음에는 상사 험담과 그 이면에 투영된 자기 연민이 주를 이루었다. 비련의 주인공처럼 신세 한탄도 이어졌다. 찌질하지만 그게 나였다. 그 무렵 책장은 '나를 오롯이 사랑하라'라고 설파하는 책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은 아득히 먼 욕심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망한 건 아니라는 위로를 더하며 계속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종종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답을 구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글을 통해 흩어져 있는 생각의 맥을 따라가며 답을 찾기도 했다.
수백 번 마음을 다잡아도 우울해지는 날이 있었다. 차마 소리 내 울어버리지 못하는 어른의 슬픈 자존심을 글에 녹여냈다. 비록 허공에 울려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일지라도, 내겐 목 놓아 울어버리는 것 못지않은 치유가 되었다.
글이 쌓여가면서 그 안에 새겨진 발자취도 늘어갔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성공은 개나 줘버리기
매일 리셋되는 하루에 충실하기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닥치고 실행하기
이전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삶의 태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고, 나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아 나선 결과라 볼 수 있다. 물론 책을 통해서 배운 부분도 있다. 공감하고 정리하다 보니 글이 되고 내가 된 것이다.
퇴사 후 6개월.
너무 빨리 적응해 버린 탓일까? 직장인 시절에 만성질환처럼 안고 살았던 예민증이나 불안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좋은 하루가 또 생기다니 오늘은 뭘 하면서 즐겁게 보낼까?라는 희망이 차오른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 나의 일상 역시 비극이다.
일어나자마자 강아지들 똥오줌을 치워야 하고, 사춘기 아이들과의 말다툼은 여전하다. 늦잠 자서 요가 클래스에 지각하고, 갑작스러운 호출에 남편 가게로 달려 나간다. 그새 빠져나간 카드값과 통장 잔고를 보며 절망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더 이상 마음이 휘청거리지는 않는다. 자격지심 구렁텅이에 빠지는 날도 줄었고불쾌감에 휩싸여도 금세 마음을 환기한다. 이제는 누군가를 욕하는 것도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덕에 감정이 옆길로 새지 않으며, 이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온전히 채울 수 있도록 돕는다. 아등바등 쫓기며 살던 시절에 비하면 대체로 평화롭다.
평화라는 건, 자극이 덜한 상태를 의미한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안온한 일상이다.
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글 쓸 의지의 소멸로 이어져 버렸다.
지금이 만족스럽기에 털어놓고 발산하는 치유의 과정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굳이 의식적으로 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이 소멸되니까.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를 그만둬야 할까?
아아, 이건 너무 극단적인 결론이다.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를 목적 상실을 이유로 떠나보내긴 아쉽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싶다.이대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떠나보낼 순 없단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