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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r 04. 2023

마음만은 20대라는 말, 이제 그만할까 봐요

회복의 속도를 받아들일 나이

일주일  전, 남편과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달 전 동네에 새로 오픈한 식당으로 한 번쯤 가보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해물을 꺼려하여 좀처럼 맛볼 기회가 없었던 터였다.


바지락 가리비 모시조개 키조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조개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근처를 지날  때마디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그날 남편은 우리 둘만이라도 가보자 했다. 아이들에게는 배달 앱으로 먹고 싶은 걸 시켜 먹으라고 한 뒤(중학생이기에 이런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조개구이 몇 년 만이냐'


자, 이제 맛을 소개할 차례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맛에 대한 리뷰는 남기지 않겠다.


일단 조개를 집다가 손을 데었고(장갑을 꼈는데도 뭔가 허술했나 보다), 이단으로는 일주일째 장염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것은 당분간 혹은 꽤나 오랜 기간 조개구이는 먹지 않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조개가 무시무시한 존재로 느껴지면서 무섭고 두렵다.


그 와중에 남편은 멀쩡하다. 그 식당에 또 가고 싶다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더라. (참고로 남편은 나와 동갑이지만 20대 못지 않은 싱싱한 위와 장을 가지고 있음)


그를 보고 있자니, 장기능이 약해 빠진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불내증 탓에 우유, 빵 등의 소화가 어려운 데다, 조금만 과식을 하면 바로 탈이 난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화기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배가 부르기 직전에 젓가락을 놓는 습관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별명은 소식좌다.


이제 나의 소화기관은 어패류까지 거부하는 건가? 아 원통하다. 편식이 없는 나로서는 먹고 싶은 게 수백수천 가지는 되는데 늘 자제해야 하는 인생, 서글프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장염 탓에 아직도 끓인 밥을 먹는 중이다. 중간에 일반식 시도했다가 된통 당하고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결국 항생제를 처방받아 왔다.


아이들은 Friday Night을 맞아 치킨을 시켜 먹었다. 튀김 냄새가 향기로워 자꾸만 코를 벌름거렸다. 바삭한 치킨을 와작 한입 베어 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치킨을 집어 들게 될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 되오!"


벌떡 일어나 등을 돌려 씽크볼로 향했다. 분노의 설거지를 시작한다.


나이를 먹으니 뭐든 오래 걸린다. 배우는 것도, 습득하는 것도, 외우는 것도, 병이 낫는 것도 그렇다.


이제 40대 중반, 결코 많이 먹은 나이는 아니다. 누구는 100세 인생 시계에서 11시도 안 된 시각이라고도 한다. 아직 왕성하고 뭐든 꿈꿀 수 있는 시기라며 용기를 북돋는다.


하지만 20, 30대 때와는 연히 다름을 느낀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도 3일 만에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려 나갔던 젊은 날은 이미 아득해졌다.


100세 인생을 준비하려면 40대인 지금도 여전히 달려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신체 노화나 뇌 기능 저하라는 현실과도 적당히 타협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의 속도와 비교하면 서러워질 뿐이니까.


아! 그리고 얼마 전 술집에서 넘어진 후유증으로 갈비뼈 쪽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X-ray 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골절이 의심된다는 소견이다.


심하게 넘어진 것도 아닌데 후유증이 오래가서 당황스럽다는 나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환자분 나이쯤 되면 발을 살짝 삐끗해도 뼈가 부러지기도 해요. 무리하지 말고 살살 사세요. 뭐 다 그런 거죠. 허허."


수없이 무릎이 깨져도 다시 놀이터로 달려 나갔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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