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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Sep 03. 2023

억 소리 나는 연봉이 부러우면 지는 거겠죠?

질투의 순간, 열등감이 엄습할 때

1차가 끝나가자 몇몇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먼저 일어났고, 정시 출근 할 필요가 없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자발적 백수는 2차로 자리를 옮겼다(나도 엄밀히 따지면 이쪽 그룹에 속하는 사람).


"A 있잖아. 걔 연봉이 1억 8천이래."


B는 새로운 소주병을 따자마자 이 말로 2차를 시작했다. A는 아까 1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멤버 중 하나였고 나와는 직접 연락을 하지 않는, 한 다리 건너 친구 관계였다.


"부러워?"

"부럽지."


B는 나름 버젓한 직장의 월급쟁이 출신으로, 몇 년 전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든 후, 현재는 Gap Year를 선언하며 자발적 백수 생활을 보내고 있다. 회사가 지긋지긋하다며 뛰쳐나와 놓고는 회사원인 A를 부러워하다니.


"어우 나는 회사 생활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 억대 연봉을 준다고 해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럽다고 말하는 B의 감정을 일축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책상 앞에 앉았지만(재택근무를 한다) 좀처럼 업무를 시작하지 못했다.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과음을 한 것도 아니고, 속이 불편해 잠을 설친 것도 아닌데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머릿속은 누가 파먹기라도 한 듯 텅 빈 느낌이었다.


다름 아닌, 이 말들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봉이 1억 8천이래.

1억 8천이래.

1억 8천이래.


떨쳐내려 할수록 나선형을 이루며 증폭되어 갔고,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흔들어봐도 다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뿐이었다.


'부럽지 않아. 부럽지 않지? 부럽진 않을 거야. 부럽긴 뭘. 부럽지 않지 않을까? 부럽지 않지 않은 건 아닌가? 부러울 수도 있을까? 부러우려나? 부러운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부러운가. 부럽네.'


타인의 부러운 마음을 단칼에 무시해 놓고는 이제 와서 부러움에 사로잡혀 일도 손에 안 잡히다니. 술자리에서는 내 마음을 미처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감했던 것일까? 아니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위선을 떤 걸까?




나는 억대 연봉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높은 연봉을 주는 기업이나 업계에서 일을 해보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포지션도 일반 행정, 관리, 연구원 쪽이었기 때문에(외국계, 공기업, 대기업, 스타트업에 모두 종사하다 보니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해 왔음) 기술력이 곧 몸값이 되는 직업적 트렌드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40대 중반을 바라보지만 Leader의 타이틀을 달아본 적도 없다. 동료들 중에는 골치 아픈 매니저 업무를 할 바에야 R&R이 명확한 오퍼레이터로서 롱런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나보다 한참 젊은 후배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디렉션을 받는 날이 다가올까 두려웠다. 올라가지 못해서 올라가지 못한 사람일 뿐이었다.


다만, 특출한 기술이나 재능은 없어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업무 태도가 불량하진 않았다. 월급 받는 만큼만 일을 하겠다는 영리한 실리주의자와도 거리가 먼, 이왕 하는 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퀄리티를 유지하려는 쪽에 가까웠다.


억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영혼까지 갈아 넣을 만큼 애를 써야 했는데, A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길래 일반 회사에서 그만큼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걸까? A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내가 알지 못했던 신세계였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 사회적 성공, 타인의 인정, 버젓한 간판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자의 여유 모두 부러웠다.


질투심이 극에 달하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A의 소식도 정보도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이 폭발한 나머지 응원하고 싶지 않은 마음.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복을 받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상기하며 응원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까?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인만큼 마음을 다져본 들 억눌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을 써야 한다"라며 나를 다그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최근 나는 스스로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에, 생각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비교하는 마음이 파동을 일으켜 질투가 온 몸을 휘감아 버릴 때, 그렇다고 해서 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며, 상대방의 불행을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마음뿐.


일단, 쿨하게 질투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 버리면 쉽다. 난 참 감정에 솔직하구나. 인간적이군.이라는 추임새를 곁들인다면 조금 더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인정하되, 내가 뒤처진 것이 아닌 삶의 장르가 다르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삶을, 나는 평지를 걷는 삶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볼 때, 나는 바다를 응시한다.


상대방의 능력, 높은 연봉, 명예나 간판 모두 대단한 것들이지만 나와 나의 환경 또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 시간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볼 여유가 있으며, 신경 쓸 일이 적어서 에너지를 헛된 곳에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니까.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역시 대단한 순간임을 기억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잘난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다. 그저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깨닫게 된다. 사는 게 다 그렇다.
- 자존감 수업 (윤홍균)

P.S ) 세상만사에 초월한 성인군자도 아니요, 매일같이 마음 수련에 힘쓰는 수도승도 아니기에 앞으로도 누군가를 시기하게 되는 상황은 분명 또 올 것이다. 그때 이 글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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