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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Sep 23. 2023

키차이 30cm 쯤 극복할 수 있잖아

키작녀 키큰남 조합, 의외의 장점 5가지

남편과 나의 키 차이는 거의 30cm에 육박한다.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엔 27cm로 줄고, 남편 컨디션이 최고조일 땐 28.5cm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키가 줄어든다던데 12일 먼저 태어난 내가 먼저 키가 줄어들까 봐 걱정이다. 지금은 거의 30cm지만 진짜 30cm가 되는 그날 말이다. 남편은 평균 신장을 훌쩍 넘는 반편, 나는 평균에서 한참 모자라기에, 키 부자인 남편이 관용을 베풀어 그의 시작점이 하루라도 더 빨랐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키가 줄지 않도록 더욱 요가에 매진해 보겠노라 다짐한다. 숨어 있는 1cm를 찾아 척추를 쭉쭉 늘리고, 아킬레스건을 쫙쫙 펴본다.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불편한 점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연애 시절 그중 대표적인 것은 남들의 시선이었다. 남자 쪽 키를 줄일 수는 없으니 여자인 내가 어딘가에 올라타야 했다. 나는 늘 7cm 정도의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2000년대 초중반은 지금보다 경직되어 있는 사회였기에 키 차이에 대한 시선도 열려있지 않았던 것 같다.



키차이를 극복? 하고 커플이 된 지 20년쯤 지나다 보니,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개성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심쿵 키 차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30cm가량 차이가 나면 오히려 설렘을 준다는 것이다.

심쿵 키차이로 알려진 영화 속 장면

이 나이에 심쿵한다는 설렘 따위는 모르겠고, 생활 측면에서 차이로 인한 장점도 의외로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 그렇다면 시대에 편승하여 긍정적인 점 몇 가지를 자랑질해보고자 한다. 다만 일방적인 1인칭 시점일 뿐이며, 남편의 입장은 들어봐야 알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길.


1. 가끔 공중부양이 가능하다 


7cm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시절, 자주 발목을 삐끗하곤 했다. 힐을 착용하면 경사진 곳에서는 몸의 중심이 쉽게 흔들리는데, 당시 우리 집은 언덕길 위에 있었다. 술기운에 늘 다니던 길도 땅이 솟아 보이거나 푹 꺼져 보이는 매직아이 효과가 나타나는 날엔 더욱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걷는 폼이 어째 불안하다며 선뜻 업어주겠다 했다. 등에 매달려 공중부양을 할 때의 편안함과 해방감은 까치발 구두로 인한 그날의 피로를 싹 날려주었다. 그 맛을 알아버린 나는 종종 술 취한 척을 하며 못 걷겠다 했고, 그는 말없이 등을 내주었다.

   

2. 터프한 일을 맡지 않는다


작은 키는 살림살이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필요한 물건을 꺼내려해도 상부장 높은 곳에 들어가 면 의자나 도구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 과정은 여간 귀찮고 불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괜히 일 벌이지 말자 싶어 남편의 귀가 시간까지 기다린다. 도구 없이도 척척해주니 시간도 단축되고 위험하지도 않다. 내친김에 그동안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to do 리스트를 읊어본다. 물론 그의 컨디션과 기분을 살피면서 말이다. 덕분에  신체 조건의 한계를 넘는 터프한 일은 맡지 않게 되었다.

  

3. 외출 준비할 때 동선이 겹쳐도 괜찮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욕실 거울에 비친 우리 둘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네 키가 생각보다 작구나. 이렇게 차이가 나는 줄 몰랐어."

그동안은 7cm 까치발을 들고 살았으니 그렇지 이 양반아! 자존심이 상했지만 대꾸하지는 않았다. 키는 객관화가 확실한 카테고리니까.


이후 언젠가 전신 거울 앞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은 내 뒤로 쓱 가더니 "와~ 뒤에 서도 내 얼굴이 다 보여! 동시에 거울을 봐도 방해가 안되다니! 우리 키는 진짜 찰떡궁합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거, 맥이는 건가?


4. 때때로 귀엽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확실히 말해두건대 이는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한참 작으니까 쁘띠 그 자체에 귀염성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내가 나보다 30cm 작은 초등학생들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것과 유사한 감정이겠지.


어찌 되었던 귀엽다는 말이 듣기 좋은  사실이다.


5. 가슴팍의 체취를 쉽게 맡을 수 있다


남자친구의 옷에서 나는 냄새가 실제로 여자친구를 안정적인 상태로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남자친구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가지가 여성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나도 남편의 옷 냄새를 좋아한다. 특히 섬유 유연제 냄새 대신 체취가 스민 세탁 2일 차의 냄새는 가히 최고다!


키가 작다 보니 허그를 하면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게 되고 마는데 이는 체취를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는 최적의 자세가 된다.


그러나 가끔은 힐링도 잠시, 체취 감별사 능이 발동한다.


 "이 옷 3일 지났네! 당장 세탁 바구니에 넣어 줘!"


이렇게 장점이 한가득이니 키작녀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시 태어나면 기필코 170cm의 신장을 갖고 싶다. 그때도 남편과 결혼할 거냐고?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한번 살아봤으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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