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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12. 2023

청소가 그렇게나 싫어서

실용적 미니멀라이프

"바닥에 머리카락 좀 치워. 먼지도 좀 닦고."

결혼 전, 엄마가 내 방에만 들어오면 했던 잔소리다.


엄마는 매일 새벽마다 걸레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발바닥에 먼지가 들러붙는 기분이 영 찜찜해서 매일 걸레질을 하지 않으면 찝찝하다고 했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결혼하면 뽀송뽀송한 바닥을 유지하고 살 줄 알았다. 청소 밀대를 쓱쓱 밀고 다니며 먼지가 싹 가신 바닥을 보면서 힐링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아니 정 반대였다. 아마도 집안일 워스트 순위를 뽑으라면 청소는 만년 1위를 차지할 것이다.


청소를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놈의 굼뜬 엉덩이 때문이다.


나는 작고 마른 몸을 가졌다. 남들의 시선에서는 빠릿빠릿하고 날랜 이미지를 가지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그러나 함부로 선입견을 갖지 말아 주길 당부한다. 한번 궁둥이를 붙이면 좀처럼 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청소의 기본은 이동이다. 온 집을 구석구석 훑지 않으면 이 방에 있던 먼지와 머리카락이 어느새 저 방으로 옮겨 가 있으니, 구역을 나누어서 하는 건 큰 효용이 없다.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하는 데다 책상이나 식탁 아래, 모서리, 가구와 벽 사이, 물건과 물건 사이까지 허리를 숙이고 닦아내는 작업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물건을 치우고 피해가며 궁둥이를 들썩이는 일은 말 그대로 노동이 된다. 게다가 밀대 걸레가 닿지 않는 구역은 핸디 청소기를 사용하거나 손걸레를 써야 하는데, 다양한 도구까지 동원해야 하는 조건은 시작하기도 전에 질려버리게 만든다. 억지로 청소를 마친다 해도 청소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듯하다. 뽀송뽀송한 바닥이 주는 희열이란 무엇일까?



최근 1년간 옷을 비워내고, 물건을 없애면서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늘어났다.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그릇과 컵들을 집밖으로 내보냈더니 싱크대 상부장은 텅텅 비었고, 드레스룸 한편에는 아예 옷이 걸리지 않은 행거렉도 생겼다.


텅 빈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희열은 침대, 책상, 식탁 등 표면을 늘 정리하는 습관으로도 이어졌다. 이 공간들은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서 깨끗하게 치우면 집안 전체가 말끔해지는 효과를 주었다. 비워둔다는 넉넉한 마음만으로도 차분한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티끌하나 허용하지 않는 청결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음 편안한 공간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다.


비움은 비움을 끌어당겨 테트리스 벽돌들이 무너지듯 물건들이 쭉쭉 빠져나갔다. 창고용 팬트리 안에 있던 아이스 박스들은 1개만 남기고 처분했고, 10년 전에 사용했던 저렴이 크리스마스트리는 미련 없이 버렸다.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옆에 세워두었던 요가매트의 새 보금자리가 탄생했다. 베란다 물건들을 모조리 치우고 천장에 매달린 건조대를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마루 한 가운데를 차지했던 건조대는 쓸모가 없어졌다. 발아래에 굴러다니던 작은 선풍기와 방구석에 쌓아 두었던 인형 박스, 잡동사니 박스도 버렸다.

우리집은 아닙니다만

바닥의 물건들을 최소로만 남겨 두었더니, 공간에 여유가 생겨 집안이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바닥에는 강아지 장난감들이 돌아다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생활감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후딱 정리해 버릴 수 있다.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거두어냈을 뿐인데 더 이상 지저분하고 어수선해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효과는 허리를 숙여 물건을 치우고 피하면서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청소는 귀찮고 싫지만 조금이나마 궁둥이를 들썩거리는 일이 감소한 것이다. 더욱이 애써서 바닥 청소를 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라는 방법을 터득했기에, 청소를 못해서 집안을 어지럽히고 산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졌다. 어지러움의 척도는 청소 여부가 아닌 물건의 양이므로, 이 부분을 해결하면 청소에는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평소에는 돌돌이 밀대를 쓱쓱 미끄러뜨리면서 대충 머리카락과 먼지만 걷어내다가 가끔 궁둥이를 들썩여도 괜찮겠다 싶은 날에만 걸레질에 임한다.


청소가 그렇게나 싫어서 물건을 비우는 쪽을 선택했더니 생활이 가벼워졌다.


엄마는 여태 뽀송뽀송한 바닥의 맛을 모른다며 잔소리를 하겠지만, 나는 물건 양이 적어서 제대로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그럭저럭 깨끗한 집이 더 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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