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라미 Oct 31. 2021

19년 후 정신을 차려보니  제자리였다.

40대 평직원의 직장 인생 재구성

나고 자라 19년이 지나니 성인이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여 정체기인지 성장기인지 여전히 판정 보류인 4년간의 어른 반 아이 시절을 보냈다. 이후 직장인이 되었고 또 다른 19년이 흘렀다.


내 나이테는 19년간 비록 도착점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점점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양으로 나선을 그려나간 반면,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꽤 먼 길을 왔다고 생각될 때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마라톤에 참가한 줄 알았는데 경기장 밖으로 나가 더 큰길을 달려보지 못한 채, 매번 트랙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19년 차 직장인이지만, 현재 업무에 대해서는 3,4년 차 후배들보다 이해도가 낮고, 실무 경험이 부족하며, 열정마저 꺼져버린 19년 차 아마추어이다.


대학 졸업 후 신입으로 들어간 외국계 기업에서는 "비서"라는 직무에 끝까지 적응을 못했다. 처음부터 비서가 아니었기에 더 강하게 저항했던 것 같다. 총무/인사부 소속으로 입사했지만, 합병이 되면서 동일 직무에 양사 합쳐 스태프가 2명 이상씩 되다 보니 짬에서 밀렸다. 대표가 출근하면 커피를 내줘야 하고, 회의 때 인원수대로 차를 타 줘야 하며, 클라이언트가 방문해도 음료를 내줘야 하고, 오후에는 홍삼을 타서 갖다 드려야 하는 매일매일이 싫었다.


대표한테 잘 보이고 싶은 관리자들이 수시로 귀찮게 한 것도 문제였다. 누더기처럼 조각조각 꿰맨 보고서를 가지고 와서 번역을 해달라고 했다. 타인을 서포트하기 위한 자리일 뿐, 내 시간이나 내 업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애매한 경력에 이직도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공기업 이직을 결심했다. 빠른 손절에 나이스 한 타이밍이었다.


공기업에 중고 신입으로 입사했지만 아직 20대 중반이었고, 이전 직장 경험 덕분인지 또래들보다 사람과 업무 적응에 빠른 편이었다. 기업 문화나 생활 면에서도 만족했다. 한 번도 적성에 안 맞는다거나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으며 회사는 지방 이전을 앞두고 있었다. 주말부부나 격주 부부를 감당해가면서 나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거처를 옮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오롯이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30대 초반에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순환보직 원칙의 공기업 경력으로는 이직이 만만치 않았기에 워라밸이라는 다른 장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입사 3일 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대표의 재량으로 약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입사했지만, 관련 경력은 전무했다. 함께 입사한 7살 아래의 신입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전 직장 경험 합이 8년 가까이 되었는데 3일 만에 모조리 쓸데없는 경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패기나 열정이 통용되는 신입의 나이도 아니었고, 팀장은 나이가 나보다 어렸다.


너무 빨리 결정했고,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다시 원점이었다.


치열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경력이 쌓였다. 이곳에서 성장은 이미 멈춰있었다. 이제 좀 더 큰 회사로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악연을 만났다. 지금 회사다.


막대사탕이었고, 아이스크림이었으며, 깍두기였다. 관리자들은 애매하고 나이 먹은 그러나 성실한 나를 통째로 삼키고는 오물오물 단물만 쪽쪽 빨아먹었다. 나는 녹아내리지 않기 위해 차갑고 혹독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했다. 경력을 살리기엔 회사의 방향과 포커스가 안 맞았으니 단발성 업무에만 투입되었다. 이후 경력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직무를 맡게 되었지만, 어디까지 교집합일 뿐, 새로 배워야 할 것이 8할 이상이었다. 그마저 시작하면 엎어지거나 끝을 맺지 못하는 업무들의 연속이었고, 소속 팀이 바뀌거나 책임자가 퇴사하면서 공중분해되었다. 다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깍두기였다.


더 이상의 회사 생활은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직장 수명을 연장할수록 남은 인생의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남들은 매몰 비용이 아까워 퇴사를 못하는데 나는 매몰될 시간이 아까워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매몰비용 효과라는 것도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개념이다. 다시 원점이 되어버렸으니 경력 계발을 위해 사용된 시간과 노력이랄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이 나고 자라 어른이 될 수 있는 19년이라는 긴 시간에 대한 회한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인생인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후회를 해야 하는 걸까? 그걸 후회한다고 지금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답답하게 왜 이걸 뜯어보고 있는 걸까? [때론 혼란한 마음]의 저자가 말한 대로 "과거는 지나간 일이 아닌, 현재의 관점에서 실시간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과거를 문제라고 여기는 현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하나였다. 19년 동안 성실히 직장에 다녔지만 스스로 만든 경력계발의 덫에 걸려 만년 평직원으로 씁쓸하게 퇴장해야 하는 현실.


퇴사 이유와 퇴사 시점이 명료해지면서 직장 졸업이라는 트랙 이탈은 후련함을 넘어 통쾌함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퇴사의 달콤한 맛에 무뎌질 때쯤 이 씁쓸한 맛이 그 자리를 꿰차고 스멀스멀 머릿속 미각을 지배하게 될까 봐 솔직히 두렵다.


희망이 없으니 절망을 느낀 거고 생명 연장은 절망 연장일 테니 직장 생활을 더 하고 싶다는 미련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남은 4개월 간 이를 비워내야 할 것인가. 혹은 또 다른 채움으로 희석시켜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아니면 그냥 있는 그대로 "난 루저"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행여 이 씁쓸함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버리더라도 최소한 지들끼리 끈끈하게 뭉쳐서 돌아다니지 않도록 좀 더 잘게 잘게 쪼개보고 싶다.  


어쩌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야 절망만이 남았음을 깨달은 게 잘 못된 걸 수도 있다. 그나마 열정과 패기가 남아 있을 때 대책 없이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자꾸만 답을 비켜가는 느낌이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의 삶을 연습해본다. 정답이 아니라면 내 답을 찾아보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