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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Nov 02. 2021

회사 성적표 종합 소견, "수고했어"

이젠, 상쾌하게 퇴사 길을 걸아보자

두어 달 전, 180일 이후 퇴사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이후 희한하게도 퇴사 이후의 삶이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당장 월급이 끊기고, 소속이 없어지는 리얼 현실이 펼쳐지는데 너무 태평한 건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 누군가였다.


"월급&소속 세트 메뉴"의 삶을 살기로 한 누군가는 먹고사니즘에 대한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한창 일할 나이에 나갈 생각부터 하는 멍청이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김수미 할머니한테 시원하게 욕한 사발 들으면서 "너는 가난을 좋아하는 놈이여(순한맛 버전)!"라고 귀싸대기 보다 아픈 뼈싸대기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근데 그쪽 방향으로는 더 이상 정신을 안 차리고 싶다. 고개를 돌리면 다른 방향에도 먹을 만한 세트 메뉴는 있는 것 같다. 월급& 소속 세트만큼 달콤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쓴맛이나 매운맛도 좋아하고, 때로는 소금 베이스의 담백한 맛도 좋아한다. 드루와드루와 일단 먹어볼 테니. 중독성 있는 달콤이는 이제 사양해보련다.


퇴사 날짜를 못 박은 건 2달 남짓이지만, 더 오랜 기간 잠재적으로 퇴사를 준비해왔던 것 같다.


먼저 돈 문제는 퇴직금으로 6개월 이상은 평소와 동일한 생활이 가능하다. 감사하게도 남편이 일을 하고 있으니 잘 만하면 1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옷이 더 이상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현실 자각, 생각의 전환, 터저버린 옷장이라는 물리적 한계로 옷은 사지 않고 있고 1년 이상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커피값도 매월 10만 원에서 2만 원대로 줄였다.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왔던 터라 이제는 소비 습관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면 될 것 같다.


소속감은 뒤집어 생각하면 타인이 주도하는 속박과 통제다. 데칼코마니로 양쪽을 쓰윽 갈라 보면 반대편에는 스스로 얻는 통제와 자유라는 개념이 있다. 울타리의 안전성보다 시간과 자유를 더 원해 떠나려는 것이니 이 문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새로운 도전은 직장 생활을 계속해도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다. 회사는 절대 내가 편한 일이나 내가 원하는 일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버텨도 떠나도 마찬가지일 테니 패스.


실패의 두려움. 사실 이 부분이 제일 무서웠다. 이도 저도 안되고 경제적인 가치 창출도 안되었을 때 후회하고 절망할 것 같아서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되뇌기로 했다. 꾸준히 우상향 하는 길목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하자. 이직 후 계속 실패했을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복기해보자.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를. 번아웃이 왔을 때 이불속에서 얼마나 웅크리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어찌 보면 20년 가까운 회사 생활은 강한 마음을 키워준 훈련소였던 것 같다. 물론 주니어 때는 이끌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할 만큼 훈련이 냉혹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니 업무에 익숙해졌다. 살 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를 과신하고 이직을 하면서 스파르타식 훈련소에 자진 입소했다. 매 과정은 죽을 맛이었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야근에 주말까지 동원해 작성해 간 보고서는 슈렉과 같이 끔찍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다행히도 내 자존심마저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은 덕분이다. 마음이 찢어지면 꼬매버렸고, 무너지면 기둥을 만들어 다시 쌓아 올렸다.


채찍질에 마음은 아팠을 지언정 아프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비위를 맞추지는 않았다. 고집과 아집일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내 보고서의 의도를 알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더 고집이 있는 것이고,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건 그들도 부족하다는 증거 아닐까?


행여 진짜로 내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 비록 아프지만 때려도 좋았다. 하지만 주섬주섬 부서진 마음을 쌓아 올리려 하면 번번이 그런 인간적인 회복은 멈추라 했다. 새롭고 급하다는 꼬리표가 붙은 업무를 던지면서 수습할 시간을 빼앗아갔다. 그럴수록 더욱 단단하게 다시 쌓고 싶었다. 번아웃이라는 구덩이에 빠지면서 단단해 지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덕분에 직장에서 강요된 만능 엔터테인먼트로 사느니 고독한 예술가로 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 내려놓고 직장에 다니면 속 편하다고들 하지만, 속 편한 것보다는 강한 마음 훈련을 선택했다. 막상 내려놓으면 하이에나 습성의 타인이 거기에 기둥을 세우고 자기들의 미래를 쌓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내 삶인데 완벽한 타인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8시간씩을 보내고 남는 건 월급도 아닌, 신용카드 명세서와 나이다. 헛헛한 마음에 자기 관리라는 프레임을 씌워 월급을 다 써버리고, 세월이라는 통장에는 월급 대신 정직하게 따박따박 입금된 나이만 남는다.


트레이닝 한번 독하게 받은 것 같다. 꾸준히 월급을 받으며 훈련받은 거니까 오히려 이득인건가. 승진이나 월급 점프, 이직과 같은 직장인으로서의 목표가 없으니 이제 하산할 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왜 그만뒀어?", "뭐하고 살려고?"라는 누군가의 의문이나 시선은 두렵지 않다. 다만, 투입 시간과 노력 대비 점수가 변변치 않은 회사 생활 최종 성적표가 좀 부끄러울 뿐이다.


그것이 퇴사 준비 중에 마주한 첫 번째 현타였다.

 

남편은 "수고했어" 한마디로 해결될 것을 왜 그렇게 멋있는 척 고민하냐고 했다. 김수미 할머니 대신 남편한테 뼈를 맞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상 맞으니 하나도 안 아프다.


스스로를 용인할 수가 없어 머리만 돌돌 싸매고 있었는데 이렇게 심플하게 해결할 수 있다니. 성적표 뒷면 종합 소견 란에 "수고했다"고 써주면 되는 거네. 노력 대비 나오지 않은 결과에 납득을 못 하겠다는 논리라면 사장에서 미끄러진 부사장도 임원 승진에 실패한 팀장도 모두 패배자일 것이다. 같은 결과를 가지고 승자가 될 수도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여기까지 뚜벅뚜벅 온 것이고, 스스로 판단해서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수고했어. 부서지지 않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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