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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Nov 17. 2021

안정적인 월급과의 불안한 시소 타기

월급이에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이제 와 생각해보니 올 봄부터 이미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 친구 한 명이 외국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두들 코로나 시국에 불안해했지만 그래도 떠나기 전 가장 젊은 날에 한번 모여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루프탑이라면 야외라서 괜찮을 거라고 셀프 안심하며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주말 외출은 1년여 만이었다. 바람에 표표히 날리는 벚꽃잎"여러분 이제 진짜 봄이에요! 봄의 전령인 저는 떠나지만 여러분은 계속 행복한 봄날을 보내시길!"이라며 손수 봄길을 깔아주는 느낌이었다.  팔랑이는 꽃잎들이 머리 위로 떨어질 때면 들릴 듯 말 듯 한 봄바람의 숨소리에 맞춰 아주 조심스럽게 머리를 털었다. 꽃잎은 다시 나풀거리며 발등 위에 살포시 내려앉곤 했다.


만나자마자 날씨 이야기부터 다.

"시간 참 빠르네. 금방 봄이야. 올해는 벚꽃 구경도 못 갔는데 말이지."

"우리 학교 다닐 때 옆 학교로 벚꽃 구경 갔던 거 생각나? 거기가 캠퍼스가 예쁘고 벚꽃도 많이 펴서 종종 놀러 가곤 했었잖아."


그렇게 한참을 우리 인생의 봄날 이야기들로 물들였다.  


"너희는 언제까지 직장 생활할 거야?"

누군가 물었다. 어느새 새내기에서 40대 아줌마로 돌아온 우린 모두 직장인이다.


"난 곧 그만두려고."

나도 모르게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뭐하고 살 거야?"

친구들의 눈이 반짝인다. 내가 대박 아이템이라도 발견한 건지, 그럴싸한 미래 계획이 있는 건지, 자기들 몰래 전문자격증이라도 취득한 건지, 남편이 자영업을 시작했다는데 회사를 그만둘 만큼 먹고살만한 건지 매우 궁금한 표정이다.  


"글쎄. 뭘 해야 하나? 그냥 돈 없이 살아볼까 해."

얘들아, 실망했지? 미안.


"불안하지 않아?"

20년 지기의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


불안이라. 비록 스쳐갈지언정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경제적 독립과 결혼 이후 내 삶 든든하게 받쳐온 기둥과 같은 존재다. 덕분에 월급 범위 내에서 계획적으로 산다면 적어도 당장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려왔다. 때로는 기가 막힌 타이밍의 성과급으로 빵꾸난 마이너스 통장을 메워주기도 하고, 매달 얼마씩 공제되는지 굳이 따져본 적 없는 국민연금은 차곡차곡 쌓여 노후에 쓸만한 용돈이 되기도 할 터였다.


돈이라는 건 명분도 권한도 없이 그 자체로 삶의 안정과 불안을 가르는 선을 그어 버린다. 난 월급쟁이였으니 이쪽 편에서 실로 안정적으로 살아왔구나.


그런데도 굳이 저편의 불안으로 건너가겠다 하니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월급이라는 안정적인 수입이 내 삶을 받쳐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리저리 뒹굴대도 편안한 내 집 안방의 기둥은 아니었다. 시소의 한쪽에서 든든한 무게로 버텨주며 다른 한쪽에 올라 탄 내가 행여나 거친 땅을 밟을까 봐 지탱해주는 짝꿍이려나? 덕분에 쉴 새 없이 발로 바닥을 구르며 올라가려 노력하지 않아도 시소 타기가 가능했다.


반대편에 탄 '월급이'가 "나 그만 할래"라며 먼저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내 집 안방 기둥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직하기 전까지는.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 자리가 소멸"되위기가 있었다. 저편에서 든든하게 시소를 받쳐주던 월급이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여차하면 먼저 내릴 준비했다.


그때의 경험은 책상과 명함을 사수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할 지옥 같은 날들이 내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었다.


물론 복선과 전조는 있었다. 맡고 있는 업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견이 묵살되었을 때,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을 때, 보고 받을 업무가 없으니 주간 회의에는 안 들어와도 된다고 했을 때 직장 생활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업무 지시는 있었고 매일 8시간 동안 마냥 놀았던 건 아니기에 막연한 희망을 가졌더랬다.


일은 점점 줄었고 결국 R&R이라 불릴 만한 일은 없어졌다. 마음이 쪼그라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질 지경이었다. 버티는 건 내 자유겠지만 말라죽기 싫으면 발로 나가라는 뜻이었나 보다.


시소에서 폴짝 뛰어 내릴 용기가 없었던 나는 '월급이'가 먼저 떠날까 두려워 발버둥에 가까운 발구름으로 버텼다. 넌 내 짝꿍이니 내리지 말라고, 가 더 열심히 하겠다며 꽉 붙들어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결과는 바뀌지 않았고, 이내 알게 되었다.  이상 회사는 내 발구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올라 앉은 사람이 딩장 쓸만하면 월급이에게 아무 짓도 안 하지만, 아래에서 지탱하는 무게보다 성과가 안 나오는 직원이라고 낙인 찍힌 이상, 짝을 이룬 월급이에게는 떠날 준비를 하라고 명하는 것을.


발버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다른 팀에서의 업무 기회가 생겨 이 회사에는 계속 남게 되었다.


시소에서는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지만 시시각각 휘청거림을 느낀다. 안정이라 생각했던 시소 위 하늘은 어느 덧 따스한 햇살 대신 온통 먹구름뿐이다. 머리 위 맑은 날들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는 추스를 새도 없이 눈보라를 맞는다. 제 아무리 봄이 오고 따뜻해져도 마음은 다시 차갑고 축축한 날씨로 돌아간다.


경력이 엉망이라 추수를 해야할 40대에 거둬들일 게 없으니 온몸으로 발을 굴러 그날 뿌린 씨를 그날 거둔다. 매일같이 집중해야 하는 인내가 사라질까 두렵고, 시소가 출렁일까 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고단함이 무섭다. 40대 평직원의 시소 타기는 이리도 불안한 것이다.


더 이상 '월급이'와의 시소 타기는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일단 이 시소에서 내려봐야, 어딘가에 새로 탈 만한 시소가 있는지 월급 말고 내 의지로 태울만한 다른 건 없는지 그 위 하늘은 볕이 드는지 어떤지도 알아볼 수 있을지 않을까.


혹은 그냥 맨땅 위를 걸어 다니면 좀 어떤가. 막연히 땅은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맨발로 밟는 땅은 의외로 보드라운 흙으로 덮여있을 수도 있다. 만약 똥을 밟으면? 씻어내지 뭐. 


내 길을 만들어 그 위를 걷는다는 건 발부터 닿아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시소 위에서는 몰랐다. 허공에는 길을 만들 수 조차 없는데 말이다.


마른땅을 걷다 보면 벚꽃이 흩날리며 꽃길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똥 밟은 발 위에 살포시 꽃잎을 얹어줄지도 모르고. 퇴사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봄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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