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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Nov 19. 2021

아놔, 왜 공무원 시험 일정을 기웃거리는 건데?

망각의 망망대해

최근 망글이 계속되면서 무작정 쓰는 건 멈추기로 했다. 브런치 앱을 켜면 "글쓰기" 혹은 "작가의 서랍" 버튼을 누르는 대신, 브런치 홈에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들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고, 다시 또 고개를 숙인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던 50일 전의 내가 민망해졌다.


브런치 유랑을 하다 꽂히는 글들은 역시 "퇴사" 혹은 "이직" 테마였다. 그중에서도 동년배들의 제2의 인생이 궁금해 관련 글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따금씩 40대인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나  내 아이들보다 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준비하신 분도 있었다. 준비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글도 있었다.


자, 이제부터 생각의 유영이 시작된다.


19년간 거쳤던 4개의 직장 중 인간관계나 기업 문화 면에서 가장 만족했고 업무적으로도 성취감을 느꼈던 곳은 단연 공공기관이었다. 나머지 회사는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혹은 딱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다닌 것 같다.


공공기관도 공직이기에 글씨체나 글자 크기는 물론,  마침표나 쉼표의 위치까지 맞추어서 작성해야 하는 속 터지리만큼 깐깐한 문서 작업을 견뎌내야 한다. 평생직장 개념인 만큼 나는 안물안궁해도 상대는 나를 무지 궁금해하는 조직 문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입사 연도가 곧 법이라서, 4~5년 대학 선배가 후배로 입사했을 때 나는 그를 후배님이라고 그는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하극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업무 변화도 심한 편이라, 한 분야에서 2~3년 정도 경력을 쌓고 익숙해질 때쯤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이 나기도 한다. 보통 20-30년 근속은 기본이니 전문 인력이나 별정직이 아니면 한 분야의 업무만 할 수가 없다. 다양한 일을 접해보고 다양하게 공적을 쌓아야 승진에도 유리하다.


누군가는 이런 조직 문화가 답답해서, 불합리하게 느껴져서 공직을 떠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게 좋았다. 나처럼 특출 나게 잘하는 분야나 재능이 없어 그저 매사에 성실한 사람에게는 천직일 수도 있으리라. 갈등을 싫어하고 배려를 중시하는 ISFP 유형이기에 조금 피곤하긴 해도 인간관계에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X와 M사이의 낀 세대라 그런지 때로는 온정주의가 좋기도 하다.

(참고로 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이유로 퇴사했다)


여기까지 미치자, 본격적으로 망망대해에 생각의 배를 띄운다.


"아! 공무원에 도전할까?"


그렇게나 공공기관 시절을 그리워하고, 공직이 체질이라고 믿고 있다면 다시 도전해도 될 것 같다. 7급은 너무 빡세니 9급을 알아본다. 국어 영어 한국사, 음 뭐 하면 되겠지. 그다음 행정학개론? 음 좀 생소하지만 하면 되겠지. 얼마 전까지는 출세 탈자라며 스스로를 불운의 아이콘이라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초긍정주의자로 변모한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공부를 잘한다기보다는 시험을 잘 보는 유형이었다. 즐거움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기에 학창 시절 배운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지만, 그 당시 나름 스스로 터득한 공부법이 있었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고 2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간 투자를 하기 시작하자 성적이 쭉쭉 올랐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은 제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고등학교에 가면 성적이 떨어진다며 겁을 주었지만 나는 인생을 통 틀어 고 3 때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공공기관 입사를 위한 토익 시험도 한 달만에 목표 점수를 이뤘는데, 참고로 생존 영어 외에 영어 회화는 한마디도 못하는 영어 울렁증 환자다. 당시 일반행정(경영학) 직군을 선택했고, 직장 생활 중 3달간 틈틈이 공부해서 합격한 후 직장 공백 없이 환승했다. 경영 쪽 과목들은 대학 때 급하게 부전공으로 선택해서 수강한 게 다였다.


시험 요령이 있다면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행복 회로를 가동한다. 2022 국가직 공무원 시험 일정을 검색한다. 5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일정이 발표되지 않은 지방직도 있으니 그리 절망적인 건 아니다.


오늘 아침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퇴사하겠습니다"를 다시 펼쳤다. 이 책은 퇴사 결심 순간부터 곁에 두고 바이블처럼 읽고 있는 책이다. 집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닌다. 침대 맡에도, 화장실에도, 식탁 위에도, 노트북 옆에도 항상 이 책이 있다. 문득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옆줄로 나란히 서 있던 동기들이 당연히 올라갈 지위를 꿰차는 와중에 나 자신은 어느 후보에도 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스스로 의외라고 느낄 만큼 엄청나게 흔들렸던 것입니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작가는 30대 후반에 더 이상 출세할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회사 생활을 지속하는 한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달리는 회사 열차의 문간에 기대어 목적지도 모른 채 노선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열차에 타고 있는 한, 직장 경력이 적고 나이도 어린 직원들의 팀장 승진이 발표될 때마다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으며, 내 또래 팀장들의 임원 승진을 볼 때마다 진작 내렸어야 했다는 후회로 가득 찰 것 같았다.  


환승을 한 들 열차 색깔만 다를 뿐 마찬가지일 거라며 퇴사를 결심하고, 아니 좀 더 거창하게 회사 졸업을 결심한 건데 공직이 할 만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환승을 기웃대고 있다니.


9급 공무원이 되더라도 완전히 내려놓고 사명감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흔들리는 마음을 제어하는 순간들은 계속될 것 같다. 공공기관에 입사하던 때는 바야흐로 20대 중반이었으니 신입의 딱지가 자연스럽고 실수마저 용인되며 열정과 패기가 무기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 와서 공직으로 돌아가려 한들 첫사랑을 다시 만난 거 외에 내게 남는 건 무얼까.


다시 밑바닥부터 조직의 틀에 적응하면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중고 신입이라며 자조 섞인 신입사원 신고식을 해야겠지. 곧 침침해질 눈으로 미간을 찌푸려가며 문서 자간과 마침표 위치를 맞춰야 하고, 인간관계와 주변을 간소화해 겨우 안물안궁 생활에 정착했는데 또다시 궁금 일색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20년은 더 어린 직원과 함께 입사하거나 10년은 더 어린 직원이 내 상사가 되는 하극상은 견딜 수 있으려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 늦깎이로 도전해서 성공한 분들 모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제라도 시간과 자유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자 퇴사하는 건데, 좋아하는 일들을 찾고 늘그막까지 지속하고 싶어서 회사를 졸업하려는 건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 더 이상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들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그만 두려는 건데, 잠시나마 퇴사의 의미를 망각한 내가 참으로 인간답기까지 하다.


이제 공직의 꿈은,
다시 돌아온 첫사랑에게 난 너를 다 잊었다며 매몰차게 차 놓고는
한동안 나 혼자 질척대며 그리워했던 그런 첫사랑이다.

진짜 그런 첫사랑이 있었던 건지, 기억조차 왜곡된 건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의 풋풋했던 내가 그리운 것뿐,
현재의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의 유영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끝.


(공공기관에서는 항상 기안문 마지막에 "끝"을 붙여야 했다. 마지막 문장 마침표 이후 한 칸 띄고 였는지, 두 칸 띄고 였는지는 이미 가물가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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