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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고 말해줘서 감사해요!

상담, 복습, 50분의 1

by 소소라미

아... 또 상담 주간이다.

영어 학원의 학기는 3개월 주기로 돌아가며, 학기당 정기 상담은 3번이다. 즉, 매월 1회의 정기 상담 주간이 도래한다.


1차 정기 상담은 매 학기 둘째 주부터 시작되는데, 상담 전 수업 참관은 필수다. 수업의 분위기나 강사의 특징 혹은 장단점과 함께 내가 상담할 학생들의 수업 적응 및 태도를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봐야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부모들은 클래스 당 학생수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납부한 학원비에 대한 ROI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학생 수가 적을수록 강사의 관심과 관리를 받을 기회가 많아지고 이것이 학업 역량 향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듯하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클래스일 경우 강사가 고르게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지, 가려진 아이들에게까지 세심한 케어를 해주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통제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하며, 특히 자신의 자녀에게 소홀할까 염려하는 학부모에게는 이런 부분을 강조한다.


1차 정기 상담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2주 만에 수업에 적응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적응을 끝낸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별빛을 닮은 눈동자에는 "제발 나 좀 발표시켜주세요"라는 간청이 담겨 있다. 원어민이 남긴 코멘트에도 칭찬이 가득하다.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만큼 상담이 쉬워진다.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서로 기분 좋게 상담을 마친다.


적응하지 못한 경우는 다시 또 두 가지로 분리된다. 아직 강사의 스타일에 녹아들지 못했거나 레벨이 맞지 않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토익 시험에서 영국이나 호주식 영어가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현상을 떠올리면 된다. 학원에는 다양한 국적의 원어민이 있는 만큼 억양이나 발음도 제각각이라, 학생들도 바뀐 선생님에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간혹 학부모가 "지난 학기 때는 전혀 문제없었는데 , 지금은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듣겠대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대개는 3~4주면 괜찮아지니, 염려 안 하셔도 된다고 설명한다. 상대방은 그제야 안심을 한다. 다행히 이슈 없이 상담이 종료된다.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레벨이 맞지 않는 경우는 다르다. 실력이 부족한데도 자동으로 레벨이 올라간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시들어간다. 레벨이 낮으면 그나마 따라잡는데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이미 격차가 벌어져 점점 더 힘들어진다. 이제라도 가정에서 복습량을 늘리고, 따로 원서 읽기나 말하기 연습을 해야 겨우 비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대개의 경우는 이렇게 가정에서 따로 지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 학부모 역시 ROI를 생각한다. 가정에서 학습이 어려운 상황인지를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덥석 잡고 늘어진다.

비싼 학원비를 지불해 가며 아이를 보내는데 학원에서는 왜 따로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 거죠?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이 감지된다.


상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에 당황한 나머지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만큼 자신이 없기 때문.


유명 수학 강사인 정승제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수업할 때 1000만 명 앞에서도 안 떨려요. 근데 노래할 땐 떨려요. 연습이 안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역량보다 더 잘 보이려다 보니까. 떨린다는 거는 나를 대중에게 감추기 위할 때,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그러는 거예요. 시험에서 안 떨려면 연습을 많이 하면 돼요.

그래. 연습 부족이다. 나도 미흡한 주제에, 학생의 연습이 부족하다며 가정에서 챙겨달라 말하는 꼴이구나. 그러나 서툴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연습 기회로 삼아보자.


정신을 가다듬고 한 템포 쉬면서 부연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미 살짝 기분이 틀어진 상대방은 불만을 덧붙이며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건너편에서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는 동안 대답을 정리한다.


"아, 어머니 그럼 학생을 좀 일찍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복습은 온라인 학습으로도 충분한데 진도율이 100%가 아니라서요. 학원에 일찍 와서 하면 집중해서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저는 좋습니다."


다행히 불편해진 심기는 누그러진 듯하다.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이는 겉마음일 뿐 속 마음은 다르다. 마음도 겉과 속으로 나누어지나 싶겠지만, 내밀히 들어가 보면 마치 양파처럼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고, 저 안 쪽 깊은 곳에 진짜 내 마음이 존재한다. 거기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이번에도 알아차리지 못할 뻔했지만 막상 학생이 일찍 등원하니 "귀찮은 일이 또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가 가정에서 신경 써주길 바란 것이 나의 진짜 속마음이었구나.


상담도 막바지를 향해 간다. 일주일 안에 50명의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나 또한 ROI를 생각한다. 학원에서 일을 계속하려면 상담 연습이 필요하고 이 연습량이 쌓여야 언젠가는 긴장하지 않는 레벨에 올라갈 수 있다.


또 하나의 연습을 위해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어머니 목소리가 산뜻하다.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학부모는 거의 처음인 듯하다.


결석이나 셔틀 안내로 서너 번 통화한 것 같긴 하지만 특별히 인상 깊었던 학부모는 아닌데, 저리도 반겨주니 내 마음도 활짝 열리는 기분이다. 원어민 코멘트와 수업 태도, 학습 적응도 등을 전달한 후 "아이가 변함없이 학원 생활 잘하고 있어서 기특하다"는 칭찬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우리 아이가 Desk에 친철한 선생님이 한분 계시다고 하던데 그분이시죠?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감사해요.


나는 학생을 특별하게 케어해 준 기억이 없다. 그저 난데없는 감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제.... 제가요???"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학부모의 감사에 대응하는 방법은 연습해 본 적이 없으니, 넉살 좋게 넘기지를 못한다. 하아, 연습해 둘걸.


겨우 목소리를 붙잡고 첫 연습을 해본다. 비록 감사 인사를 받을 확률은 50분의 1이지만.

감사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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