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눈빛, 모순
퇴원한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곧 중간고사라서 준비해야 하는데 그래도 익숙한 곳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 기회에 영어도 다시 시켜보려고요.
그 학생은 지난여름 미술 수업을 받아야 한다며 학원을 그만뒀다. 원장이 예체능 계열이라도 상위권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미리미리 영어를 해두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복귀일, 학생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그림은 재미있니? 이제 영어도 계속하는 거지?"
"중간고사 때문에 잠시 온 거예요."
학부모 상담 내용과 결이 달라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다시 왔으니 새로운 각오는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학생은 기존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도 엎드려 있기만 했다. 공백이 있었던 만큼 어색하고 피곤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일에 다시 걸려 온 전화.
선생님, 애가 영어 학원 안 간대요.
"네? 이제 1번 수업했는걸요? 다시 적응하느라 힘든 건 이해하지만, 중간고사 대비 기간인 만큼 한번 빠지면 결손이 커요. 어떻게든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도 별 짓을 다 해봤는데 애가 울고불고 난리네요. 혹시 나머지 수업료는 환불될까요?"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함을 직감했다.
환불 규정 및 절차를 설명하니, 어머니는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걱정을 한가득 담아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면서, 대학은 안 가도 된다고 하네요. 속상해 죽겠어요. 대학엔 가야 하는데..
답답한 마음에 상담할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퇴원하는 마당이라도 Desk 상담 교사로서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가 아닌, 순간, "오히려 꿈을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스쳤기 때문이다. 우선 학생과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언젠가부터 내 딸의 눈빛이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어릴 땐 나름 총명하고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빛을 잃어버린 눈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처음에는 고 2인만큼 공부가 힘들고 체력적으로 달려서 그럴 거라고 치부했지만, 지쳤거나 피곤해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판단이 섰다.
우리 부부는 좀 더 지켜보다 아이의 마음 상태를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대답은 눈빛만큼이나 흐리멍덩했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 솔직히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딸은 줄곧 좋아하는 과목과 목표로 하는 학과가 있었고, 생활기록부까지 그쪽으로 맞춰서 만들어왔다.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쪽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거야?"
"응. 막상 해보니 별로 흥미가 없어. 심지어 생각보다 그 과목을 잘하지도 않아. 그냥 취업 잘되는 쪽이라고 해서 혹했던 것 같아. 근데 이미 늦었잖아. 중간에 생기부를 바꾸면 대학 못 가."
남편과 나는 크게 당황했지만, 생활기록부에 상관없이, 아니, 대학과 관계없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딸이 진짜 관심 있는 분야는 따로 있었으며, 그쪽으로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데다, 단순히 지금 생활이 싫어서 "도피"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엄마 아빠에게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다고 전하며, "네 의지만 확고하다면 지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다만, 남들과 다른 길인 만큼 또 다른 외로움과 고통이 따를 텐데 이를 극복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아이는 예상대로 수 없이 많은 난관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 중이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경로를 이탈한 대가는 혹독하다. 정보나 조언을 구하는 것조차 스스로 해야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내가 선택한 것이니 내가 책임질 것"이라며 눈빛을 반짝인다. 집에 돌아오면 한숨과 함께 방문을 닫고 들어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식탁에 먼저 앉는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듯 하다.
나 역시 궤도 이탈자다. 비록 늦깎이 이긴 하지만.
3년 전, 마흔두 살의 나이에 나름 큰 규모의, 복지나 처우도 나쁘지 않았던 회사를 그만뒀다.
나에게까지 파장은 없었으나 회사는 40대 중반 이상 평사원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면담을 진행하며 도전 과제를 주면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으면 여지없이 목을 졸라댔다. 버티지 못하는 선배들은 스스로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정체되었다는 이유(본질은 나이었을 것이다)로 역할을 하나씩 빼고는 그 자리를 젊은 인력들로 교체하면서 뒷방 늙은이로 변모시켰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어 보였고, 이는 나의 미래였다.
운이 나쁘게도 다른 회사들 역시 나를 원하지 않았다. 리더 경험이 없는 40대는 쓸모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나 역시 궤도를 이탈한 후 맨몸으로 거친 풍파를 맞았다. 각오는 되어 있었으나 막상 소속이 없어지니 나를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어떤 사람이라 소개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시선을 남이 아닌 내 기준으로 바꿔보니 의외로 간단했다. 나를 내가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오히려 축복받은 일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소속이나 경제 활동과 관계없이 모든 행위에는 의미가 있으며 역할을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남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보니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 길이 자갈밭일이나 지뢰밭일 수도 있지만,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균형 잡는 법을 배우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서는 도망가지 않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다. 여태껏 걸어보지 못한 꽃길(예를 들어 아침 햇살을 맞으며 요가를 하고, 한가로운 오후에 카페에 가는 일상) 위에서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호사도 누렸다.
다양한 기회와 다층적인 만남을 통해 여러 삶의 형태를 간접 경험하면서, 그동안 우물 안에서 잘난 척이나 하면서 살아온 건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궤도는 하나가 아니기에 궤도를 이탈했다는 말 자체가 모순임을. 저마다의 궤도를 만들어가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