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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품을 떠나는 아이들

bird+끼, 잠, 10대

by 소소라미

전화가 걸려오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학부모의 욕설이 들다.

이 새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너 이 새끼 학원도 가지 말고 니 맘대로 살아!


"여...여보세요? 어머니, 지금 통화가 가능하신 상황인가요?"


뚜뚜뚜. 상대방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비슷한 통화가 2번 더 반복된 후, 학부모는 다시 전화해 격앙된 목소리로 통보했다.


학생을 오늘부터 학원에 등원시키지 않을 거라며, 숙제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는 애들 보내서 무엇하겠냐는 자조 섞인 답정너식 질문이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듣고 싶으니 어머니에게 일단 조금 침착하게 대화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학부모는 그제야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는 숙제가 달랑 한 장밖에 없다는데 이거 거짓말인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또한 단어 공부도 전혀 안 하고 팽팽 놀고 자빠졌는데 재시험 면제권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부연했다.


어머니, 제가 설명드릴게요. 숙제는 한 장이 맞고요. 단어 재시험 면제권은 학생이 수업시간 참여도나 성취도가 우수해서 선생님이 상으로 주신 것 같아요. 학생이 그걸 잘 아껴둔 거고요. 그래도 혹시 원하신다면 앞으로 학생의 면제권은 무효화시키겠습니다.


어머니는 그제야 조금 누구러진 자세로 지금 당장 면제권을 찢어버리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하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단어 통과 못하면 수업에 못 들어가는 페널티를 부과할 테니 학원에는 꼭 보내주십사 전했다. 어머니는 알겠다 했다. (학원에서는 매 수업 전에 단어테스트를 진행한다)


결국 학생은 그날 1시간이나 지각했는데, 중간에 전화해 사유를 물어보니 혼내느라고 못 보내고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생은 조금 뺀질거리는 경향은 있어도 수업 태도도 좋고, 무엇보다 결석이나 지각이 거의 없는 성실한 아이였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영어 과목에서 100점을 받는 등 실력 또한 우수했다.


이 새끼, 저 새끼, 소새끼, 말새끼 별별 욕을 들을 만큼 불량하지는 않은데 대체 어머니는 뭐가 그리 불만인 것일까? 알아서 착실히 공부하지 않고, 다소 껄렁한 데다 약간은 반항기까지 보이는 건 상당수 사춘기 남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내 아이만큼은 모범적으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어른조차 나 자신에 대해서도 때때로 통제력을 잃곤 하는데, 하물며 다른 인격체인 자식에게 그게 통할까? 만약 된다 해도 집에서는 순응하는 척만 하고 밖에서는 그렇지 않을 확률도 높다. 가면을 쓰고 진짜 모습을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투명하게 안과 밖에서 동일한 행동과 말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학생에게 중간고사 100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학원에서 준비한 상장과 상품을 전달했다.


"이거 정말 제 거예요? 저 이런 상 처음 받아봐요. 와 진짜 대박이다"


해맑고 순수한 미소가 전해졌다. 적어도 안과 밖이 다른 아이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또 한 통의 전화.

우리 아이 이제 학원에 그만 다닐까 해요. 뭘 하고 싶지가 않다네요. 다른 학원도 다 끊었어요.


이 학생 역시 한창 사춘기를 질주하는 중학생이었다. 얌전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결석이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석 확인 전화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학교 다녀와서 머리가 아프다며 드러누웠는데 깨워도 꼼짝을 안 해요. 속상해 죽겠어요"라는 말을 되풀이하고는 했다. 연속된 결석으로 인해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었고 원장이 면담을 진행했다.


원장은 이슈 기록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겼다.

학생이 엄마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함. 최근에 이유 없이 우울감이 드는데 그냥 자고만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함. 학생이 어머니께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음. 어머니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 뻔하다는 이유임

그로부터 3개월 후쯤 어머니는 퇴원을 결정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학생과 대화를 많이 해보셨는지 여쭤보았다.


"물어봐도 말을 안 해요. 그냥 내버려달라고만 해서 답답해 죽겠어요. 영어 학원 오래 다니기도 했고 예전에 외고 가고 싶다고 해서 영어에 집중해 왔는데, 너무 아쉬워요. 지금은 외고 이야기도 못 꺼내요. 아예 입을 닫아버리거든요."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학업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계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더 이상 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 어머니가 멘털이 강한 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제삼자가 오지랖 넓게 개입했다가는 그걸로 또 물고 늘어지고 학생에게 전가될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학생이 지쳐있는 상태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 원인이 학교든, 가정이든 간에 책임은 부모의 몫이다.


나 또한 "이번 생은 처음"인 만큼 엄마 역할 역시 처음이다. 나와 다른 기질과 성향의 내 아이를 마주할 때의 당혹스러움은 육아 18년 차인 지금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딪치고 배우면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숙명인 것이다. 부디 그 어머니도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냈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과 자주 대화하려 노력하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의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30년 가까운 시간 간격을 단 몇 마디 말로 메워내기란 쉽지 않다. 부모가 제 생각대로 자녀가 따라와 주기를 원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논리가 없는 꼰대 생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시대가 급변해 온 만큼 우리가 경험했던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고, 어쩌면 부모인 내가 외계인처럼 이 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내 아이가 무수히 많은 자극들 속에서 치우침 없이 길을 걷고 있는 자체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내 자식을 인정하고 품어주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대신해 줄까? 물론 부모들의 속 터지는 마음은 100번 1000번 이해한다. 나 역시하루에 12번도 천불이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공부를 등한시한다고 함부로 욕은 하지 말아 줬으면, 무기력한 아이에 대한 속상함을 드러내기 전에 말없이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학원에 취업한 이후 학부모들과 상담하며 일종의 거울치료 효과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생기곤 한다. 이처럼 모든 순간, 모든 만남에는 배움이 존재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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