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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과목 올백이라 한다

시험 기간, 남의 아이, 물컵

by 소소라미

내신 기간이 되면 학원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둘러싸인다. 내신 대비반으로 편성된 학생들의 결석이나 지각은 엄격히 금지되고 약간이라도 이상 기운이 감지되면 즉각 이슈 보고 대상에 포함된다. 약 4주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주 2회 6시부터 10시까지 고강도 수업 및 학습 시간을 갖는다. 잠시 물을 마시러 나온다거나 화장실에 가는 건 허용되지만, 면학 분위기 형성을 위해 2명 이상 무리 지어 다니는 건 통제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늘어간다. 평상시에는 생기발랄했던 아이들조차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 내쉰다. 오직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힘내

가끔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내신 기간 후에 바로 퇴원 의사를 밝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험 결과로써 운영 방식의 정당성이 증명되기 때문인지 대개의 학부모들은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억압된 반 감금 상태여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오히려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찬양하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내 아이 성적만 잘 나온다면 햇살 같은 미소가 먹구름 속에 갇혀 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다.


시험을 치르는 날이면 Desk는 한층 분주해진다.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돌린다.


"어머니~ 우리 OO이 시험 잘 보고 왔대요?"


상담 전화가 아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실, 묻기 전에 전화를 받는 학부모의 목소리만으로 결과는 대충 짐작된다.


"네 100점이래요!"


"어머나~ 축하드립니다. OO 이한테도 잘했다고 칭찬 듬뿍 해주세요."


이어 팀 톡방에 보고를 올린다.

OOO 학생 100점입니다.

원장은 즉각 반응한다.

얼쑤 좋구나~ (믿기지 않겠지만, 이 워딩 그대로다)

모든 대상자에 대한 확인이 끝나면 종합표를 작성하여 보고하고는 학원 밖 외벽에 한 명 한 명의 결과를 담은 벽보를 붙인다.

2025년 2학기 중간고사 100점 A학교 1학년 OOO
2025년 2학기 중간고사 100점 A학교 2학년 OOO
...

그래도 대체로 결과가 잘 나왔으니 안도감이 든다. 물론 학생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성적 하락이나 부진으로 인한 추가 이슈가 생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는, 보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이제야 먹구름이 걷힌 듯 반짝이는 미소를 머금고 학원문을 연다. 10대의 밝은 기운을 되찾은 그들로부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 힘내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눈이 마주치는 아이를 향해 한 마디 건네본다.

시험 보느라 힘들었지? 수고했어

나는 딱 여기까지다.


반면, 옆자리 실장은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건지 수업 대기 중인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내어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다른 과목도 잘 봤니?"


"네, 수학은 92점이고 과학은 아깝게 서술형에서 틀렸어요. 국어도 1개 틀렸고요."


"에이, 왜 틀렸어? 좀 더 꼼꼼하게 풀어보지. "


아이의 미소는 다시 먹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들리니까 듣고 있는 것뿐이지만, 굳이 다른 과목 성적까지 물어보고 1개 틀린 걸 질책하는 듯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매우 준수한 성적임에도 잘못된 점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칭찬 한마디 하지 않는 태도에 화도 난다. 제삼자가 굳이 다른 과목의 결과까지 들춰내고 꾸중하는 건 과한 오지랖이다. 그 과목을 본인이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봐요. "물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 좀 가져보라고요!


한편, 같은 질문을 받은 다른 학생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다른 과목도 다 100점 받았어요."


"와~ 진짜 너무 잘했다!"


그제야 칭찬의 말을 전한다. 100점만 칭찬받는 잔인한 세상이다.


실장은 퇴근 시간까지 그 학생이 전 과목 올백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예전부터 천재라고 느꼈다는 둥, 과학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둥 마치 자신이 혹은 자신의 아이가 성취한 것처럼 뿌듯함을 표현했다.(그녀는 자발적 DINK 족이다) 하지만 불과 1미터 거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남의 아이 이야기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 귀가 "반사"를 위치며 튕겨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아이의 성적이 마음을 어지럽히기 전에.


아니다. 내 마음은 이미 학생이 올백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자녀를 가진 부모의 마음이 무척이나 궁금하고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 역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들은 기억은 거의 없다. 이번 시험에는 좀 달라질까 기대를 해보지만, 매번 희망 고문으로 끝났다. 아이들의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사교육비가 아까워 미치겠는데 안 보낼 수도 없다는 찝찝한 열린 결말을 이야기하곤 했다.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을 지닌 건 맞지만,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아이가 더 잘하는지,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위권 아이들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면 속은 편하니까.


따라서, 내가 실장을 향해 분노감이 차오른 건 어쩌면 나의 모를 권리를 방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나의 관점일 뿐, 이런 속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없는 타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오히려 학원 관리자로서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업 역량이나 진로에 관심을 갖고 확인하는 건 프로페셔널한 자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나는 사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개입시킨 나머지 중심을 잃어버렸다.


퇴근 후 남편에게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며, 비교심이 들어 하루 종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속상할 것도 비교할 것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아이들 세대는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비전까지 제시하며 말이다. 게다가 나도 내 부모 뜻대로 살지 않았는데, 내 자식이 내 맘대로 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공부는 덜 했을지언정, 여전히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며 함께 운동하고 노래방도 가고 무엇보다 대화를 많이 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작 물이 반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다음 시험 기간에는 "남의 아이가 올백 맞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중심을 잘 잡아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 튕겨 내 버리겠다. 우리 아이 물컵에는 물이 반이나 있다고 외치면서.

Is the glass half empty or half full?
The glass is half 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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