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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Dec 05. 2021

직장은 버티기로 했으니, 뽑아 먹을 것부터 찾아볼까

돈이 참 밉지만 그래도 돈돈돈

당장 그만두지 마시고 일단 뽑아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동기부여가 될지 몰라요.

지난 8월, 퇴사 결정 이야기를 들은 친한 동생이 해준 말이다.


내년 초에는 성과급이 나오고 월급도 오를 테니 일단 좀 더 있어봐요.

지난 9월, 팀 동료의 조언이었다.


당시에 나는 돈이 부족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며, 아끼고 살 준비는 이미 되어 있으니 당장이라도 때려치우려는 기세였지만 주변의 반응은 현실적이며 이성적이었다. 측근들이니만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이었고, 능력이 아깝다는 칭찬까지 곁들여 주었다.


그들 역시 직장이 행복해서라거나, 자아실현을 위해, 크게 인정을 받고 있어서 혹은 장밋빛 미래만이 가득해서 울타리 안의 생활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이유로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 나름의 이유로 동기부여를 찾고 있다. 직장 상사로부터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잽 공격을 막아내면서 때로는 보호색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때로는 상사 뒤통수에 대고 주먹감자를 날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직장인이다. 숱하게 상처를 입고 약을 바르고 다시 밴드를 붙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삶은 그들과 나뿐 아니라 우리가 출퇴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의 나는 무방비로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나올 수는 없어서 6개월간의 퇴사 준비 기간을 정했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글쓰기였다. 처음에는 왜 회사를 나오고 싶은 것인지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인데, 쓰다 보니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회사 상사들에 대한 불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일해야 하는 직무에 대한 불만, 성실히 일해주는 나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하루의 1/3을 오롯이 타인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사용해야 하고, 얽혀 있는 사람들로 인해 머리가 아프며(주변 동료들은 정말 좋아하지만 비즈니스로만 연관된 사람들이 싫다는 이야기), 제 나이에 승진하지 못하고 오퍼레이터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결론은 하기 싫고 그렇게는 살기 싫으니 하고 싶지 않다 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한 퇴사의 경우, 마인드는 적극적이나 대책은 소극적인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동생과 동료도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장인은 극히 드물 것이다. 19년간 직장에서 스친 인연들 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다들 싫어 죽겠다고, 적성에도 안 맞는다고 하소연한다. 다만 3종 세트인 월급, 명함, 인맥 혹은 그밖에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 그리고 가끔 느끼는 성취와 성과, 보람의 가치가 더 클 뿐이다. 그러니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퇴사한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직장의 울타리를 뿌리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퇴사 후에 뭐할 건데?라는 질문에는 입장이 달라진다.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지 않는 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속되는 일이 아닌 툭툭 털어버리고 리셋되는 일, 시간의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모호하고 뜬구름이다. 이렇게나 소극적이라니.


코로나 시국이긴 하만 세계여행이 하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하는 거라면 좋겠다.


어쩌면 자식의 도리를 위해 좀 더 머무르는 것을 결정한 것은 퇴사 이유가 "하기 싫은 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뭘 하고 살아나갈지 계획도 없고 자신도 없으니, 혹여 돈이 부족해 자식 도리를 못할까 봐, 그래서 당신들의 노후가 걱정이 되어 남아 보기로 한 것이다. 어찌 되었던 난 버텨야 한다.




뭐라도 동기부여를 찾기로 했다. 내 결정이지만 지치는 타임이 올 수도 있고 악으로 버티기다가 스스로를 옭아맬 것이다. 그러다 20대의 나처럼 가족에 대한 원망의 화살이 다시 목구멍을 타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결혼이라는 도피처라도 있었지만(결국 도피하지 못했다), 결국 발버둥을 쳐도 내 운명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다짐이라는 탑이 쉽게 흔들릴 수 있으니 꽉 붙들 수 있는 기둥을 만들어야겠다. 뽑아먹을 게 있으면 다 뽑아 먹어야 한다는 친한 동생의 말을 상기한다.


이전처럼 열심히 일하기는 싫고 약간은 월급루팡으로 살아보려 한다. 그러니 보람이나 성취감은 일단 아니고, 명함은 금융 거래에 필요하겠구나. 인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니 체감이 없다.


으악. 결국은 돈이다.


돈을 위해 남기로 한 것이니, 돈이 주가 되어야 한다.

아 괴롭다. 돈에서 자유롭고 싶었는데 다시 돈으로 돌아왔다.


돈돈돈 하지 않기로 했는데 돈돈돈 하게 생겼다. 돈이 참 밉다.


20대에 돈돈돈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알뜰하게 살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고 나는 보고 자란 그대로 물려받았다. 1000원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사고 싶은 옷이 생겨도 일단 며칠을 고민했고 계획을 세워 구매했다. 화장품이나 명품에도 관심이 없어서 필요한 만큼만 구입했고 돈이 아까워서 사무실에 커피를 사들고 출근하지도 않았으며, 친구들을 만나도 더치페이가 당연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절약이 습관 된 사람이었다. 남은 돈은 대부분 저금하거나 여행이나 결혼자금 등 더 큰 계획을 위해서 아껴뒀다.


하지만 우리 집 항아리엔 밑이라도 빠져 있었던 건지 줄줄 새어 나갔다. 상당수는 빚을 갚는 데 사용되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빠 손에 아끌려 은행에 가서 사인을 했었다. 뭔가 내 몫으로도 빚을 돌려 놓는다는 것에 동의한 것 같다. 그렇게 해두면 아빠가 조금은 숨통이 트이신다고 했다. 취업 후 수년간 은행에서는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마지막 1원까지 독촉을 했다. 빚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 약간 남겨둔 저축과 미래의 내 잠재력을 더해 결혼자금을 마련했다. 결혼 후 일정 기간 아이들 양육을 도와주시는 부모님과 살림을 합쳐 양육비 대신 저축을 해서 전세금을 마련해 드렸고 그 이후 내 인생에서는 저축이란 없었다.


저축이라는 이름이 나에겐 허무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직장 생활을 하는 나를 도와 아이들을 키워주셨으니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드리고, 병원비나 이사비용을 보태드렸다. 어느 자식도 부모님이 노후에 제때 치료를 못하시거나 다리가 아프신데 높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터. 그러니 그 자체에 원망은 없다. 다만 나에게도 보상을 해야 한다며 월급 남는 돈을 다 쓰고 마이너스 직전으로 살아온 내가 조금은 원망스럽다.




하지만, 어렵게 퇴사의 시간표를 돌린 만큼 이제는 돈의 의미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돈은 이를 둘러싼 탐욕만이 있을 뿐, 자체는 잘못은 없다. 그러니 저축도 잘못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게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라면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일 거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 내가 느꼈던 허무함은 아직은 젊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곳에 사용되는 돈의 행방에 대한 배신감이었을 거다. 이제는 내가 설계해서 지켜내려는 것이니 그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퇴사할 때 필요한 금액과 실행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성과급, 복리후생비, 경조사 지원금, 월급을 얼마나 받을 수 있으며 얼마를 저축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성과급은 몽땅 저금하기로 했다. 다행히 당분간 부모님이 집수리나 이사는 안 하실 듯하다. 복리후생비로는 음식물처리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매년 복리후생비를 이용해 필요한 가전제품을 하나씩 들여왔는데 회사를 그만둔다면 내 돈을 들여 사야 하거나 불편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경조비도 당분간 챙길 수 있겠다. 건강 상의 이유이지만 최근 커피를 끊었기 때문에 5만원 더 저축이 가능하다. 대신 차를 애용하기 시작했는데, 팀 비(복리후생비)를 사용해 캐비닛에는 항상 우려먹는 차를 쟁여놓기 때문에 공짜로 마실 수 있다. 팀비로 장을 볼 때는 내가 좋아하는 두유나 견과류 간식을 고르면 된다. 그동안은 초콜릿만 집어드는 팀원들에게 양보하고(참고로 나는 초콜릿을 먹지 않는다),  내 것은 고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골라야겠다. 이제 회사에서는 점심값 외에 돈을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지만, 20대 때 저축하고 살던 내가 나에게 남겨준 건 해봤으니 할 수 있다는 용기다. 난 원래 짠순이로 잘 살았고 돈의 행방이 황당했던 것일 뿐 알뜰히 쓰고 저축하는 자체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자식 도리를 위해 회사에 빨대를 꽂고 돈이라도 뽑아 먹어야겠다.


그리고 20대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고생했고 사랑한다고.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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