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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Dec 07. 2021

회사에서는 J형이 되고 픈 P형 인간

회사 인간은 다분히 "계획적"이어야 합니다

중학교 때 국사 시간이었다.

"야 너 너무 산만해. 다음 수업 시간부터는 뒤로 가서 앉아."

'앗싸. 나도 뒤에 한번 앉고 싶었는데. 잘 됐네.'


그다음 국사 시간부터는 우리 분단 맨 뒷자리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어떤 친구였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맨 앞자리와 흔쾌히 바꾸어 준 걸 보면 국사 시간을 싫어하지는 않았나 보다.


학창 시절 나는 으레 부산스럽다고 지적을 받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참 많이 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노잼 수업을 견디지 못했다.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거나 요점이 흐려진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노트에 하염없이 낙서를 했다. 좀 더 지겨워지면 하품을 해댔고, 졸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며, 나도 모르게 나오는 침을 스윽 삼키다 소스라치게 놀라 깬 적도 있었다. 교과서에 다 있는 내용인데 굳이 저렇게 재미없게 설명해야 하나. 책을 덮어버렸다. 반항은 아니었으나 무례했다는 생각은 든다.


누구나 한번쯤 있을 법한 추억담이지만, 그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산만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뒤쪽에는 수업태도가 나쁘거나 불량한 아이들이, 앞쪽에는 착실한 모범생들이 포진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키가 작고 성적도 괜찮다는 이유로 항상 앞쪽에서 놀았다. 내 시험 성적을 본 선생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수업태도에 비해 성적이 곧 잘 나온 이유는 문제집 풀이를 즐기고,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나에게 가르치는 이른바 In put과 Out put을 동시에 하는 공부 방식을 선택한 덕인데, 이 과정이 나름 재미 있었다).


나 역시 수업 시간에도 성실하게 임하고 싶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며 열심히 필기하는 모범적인 아이들이 부러웠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한 글자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총기를 담아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노력해도 내 수업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매번 "잘 못 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나도 내가 왜 그렇게 산만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따분하다"라고만 느꼈을 뿐.


차라리 기계적이라도 교과서에 일일이 밑줄을 그으라고 말해주거나 칠판 앞으로 나와서 문제를 푸는 시간, 아무 말 대잔치라도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이 나았다.


"자 여기는 중요하니까 밑줄! 여기는 물결! 여기는 형광펜으로 강조!"


형형색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을 바꿔가며 글씨를 쓰면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그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활발히 수업에 참여한 수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국사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은 질문 방식의 쌍방향 수업을 진행했다. 목소리는 중저음에 톤 변화도 없는 그야말로 인간 수면제가 따로 없었으나, 반 친구들 대부분이 전멸한 중에도 나는 총기를 잃지 않았다. 국사 성적은 항상 100점이었고, 국사 선생님은 나를 "엘리트" 학생이라 불렀다.



 

맞다. 나는 다소 즉흥적이며, 의식적으로 정돈하지 않으면 늘 어질러져 있고, 자주 덤벙거려서 무언가를 빠뜨린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도 느슨한 편이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막상 계획한 것을 아예 외면하거나 계획 자체에 대한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고야 만다.


직장 생활에서는 계획이나 목표가 필요하고 그 달성 또한 중요하지만, 재미"라는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면 이상과 현실의 불협화음으로 회의감과 허무감이 들기 시작한다(머리나 배도 자주 아프다). 귀한 시간을 이 따위 일을 위해서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그만하고 싶어 진다. 야 하니까 해야 된다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틀에 박힌 일정과 룰대로 수행하는 것이 갑갑하고, 개선하지 않고 답습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전형적인 *P형 인간이다. 직장 생활에는 상당히 불리한 뇌구조다.

*P형: MBTI 성격 지표 중 인식형(Perceiving)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일하기란 음.. 쉽지 않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는 직장인의 상당수는 재미를 찾기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계획된 소비와 계획된 일상 영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계획하여 실천해 나가는 인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이들은 업무 역시 조직화된 구조 안에서 진행하며, 계획이 틀어지지 않도록 미루지 않고 수행한다. 따라서 시간 관리가 탁월하고, 빠르게 결정하며 효율적으로 실행한다. 일에 대한 싫고 좋음의 구분은 있지만,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다. 목적의식이 강하고 통제와 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싫고 좋고가 아닌,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기준에 집중한다.


내가 "하기 싫으니 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칠 때, 이들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해!"라고 읊조린다.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정말 부럽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저 따분한 일을 어떻게 저렇게 묵묵히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아! J형 인가보다."라고 결론을 낸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거의 다 J형이라고 답하더군)

*J형: MBTI 성격 지표 중 판단형 (Judging)




결국 회사를 뛰쳐나오겠다고 결심했을 때, "저놈의 울타리 박차고 나오면 진짜 속 시원하겠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릴 때 지루한 선생님의 수업을 따르지 않고 나 스스로 방법을 찾았던 것처럼, 드디어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았구나! 얼씨구나 좋았다.


하지만 진짜 끝이라 생각했던 회사라는 악보의 끝에는 도돌이표가 그려져 있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당장 뛰쳐나갈 수는 없으니, 뛰쳐나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다. 노잼이라서 안 하고 싶다고, 하기 싫어서 안 하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기 전에, 흔한 J형처럼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자기 통제와 조정 능력을 조금이라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하려나. 아니다. 하루 아침엔 어렵겠지. 집에서는 이부자리 정리도 제대로 안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갑자기 계획적 자기 통제라니, 욕심부리지 말고 이부자리 정리부터 시작해보기로.


P의 특징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면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포용력을 통해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도 융통성을 발휘하며 경직되지 않고 생각이 자유롭다. 사실 나는 내가 P라서 좋을 때가 많다. 종종 낭만적이고 때론 사랑스럽다(변태인가).


직장 생활은 계속해야 하므로, 다시 한번 "재미"로 초점을 옮겨본다. 계획을 세우고, 기가 막힌 시간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나마 뭐라도 재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니, 각 업무마다 긍정적인 요소를 하나씩만 찾아보자. 단, 사람에는 의존하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 찾는 재미야 말로 자기 통제적 삶의 시작일 수도 있으니.


교과서에 다양한 색으로 밑줄 치는 것을 즐겼듯이, 엑셀에 컬러를 입히고, PPT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메일 쓰는 일은 글쓰기 연습이라고 생각해보자. 숫자를 집요하게 분석해서 원인을 찾는 일, 숨겨진 숫자를 찾는 일은 문제집 풀이처럼 달콤한 일일지도 모른다. 잘 안될 것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어려웠던 개념을 스스로 In put 하고 다시 Out put으로 연결하여 답을 찾아가던 희열을 가져다주려나.


일단 일에 재미를 붙여보려 한다. 그러다 언젠가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가치가 있다며,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 감각을 갖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만은 J형 인간이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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