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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의저편 Dec 25. 2023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의 연륜만큼 시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짙었고, 감동은 묵직했습니다.

나의 가벼움은 한순간에 초연해졌고,

그분이 택한  단어의 언어들은 사막화된

나의 삶의 심장에 한 폭의 오아시스였습니다.


특히, '옛날의 그 집'은 그녀가 여인으로써

인고의 시간들이 강하게 느껴질 만큼 나를

때려왔습니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라는 시의 마지막 시절엔

얼마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강했는지를 온몸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하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새겨진 시 한 편 한 편에는 그분의 삶의  마지막

자서전 같은 평가로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떨림의 진동의 공명으로

다가옵니다.


"늘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글 쓰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변함없이 수십 장, 수백 장의 파지를 내시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들은 그다지 고치시지도 않고 물 흐르듯

써내셨습니다"


이 글은 박경리선생의 딸인 김영주분이

작성한 서문입니다. 몇 줄의 글에서 박경리

선생의 작품들이 인내와 연단의 기다림

결과물이었음이 쉽게 가늠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결국은 그녀의 삶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육신이 녹슬고 마음이 녹슬고

폐물이 되어 간다는 것을

생명은 오로지 능동성의 활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일은 보배다"


<밤>이라는 시에서 느껴지는 열정은, 몸의

쇄약함을 이겨내는 송곳 같고 활화산 같은

열의마저 느껴집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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