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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Sep 23. 2024

이슬람의 올바른 이해 10

<신 혹은 악마>, 이슬람에 관한 오해와 진실

표지 사진: 지브롤터의 바위 / 출처: Google, <지브롤터>





제 4 장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과 이슬람 테러리즘의 탄생 02



아프리카로부터 지브롤터(Gibraltar: 지브롤터라는 지명은 자발 알 타리크의 바위라는 뜻이다.) 해협을 건너온 베르베르(berber) 인 장군 자발 알 타리크(Jabal al-Tarik)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 661~750)의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휩쓸고 유럽의 심장부를 위협한 지 800여년 뒤에 비슷한 위기가 유럽에 다시 한 번 닥쳐왔다.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휩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대군이 1529년과 1683년 두 차례에 걸쳐 빈(Wien) 턱밑까지 쇄도했으나 이번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Austria-Habsburgerreich, 1438~1918)이 나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때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빈 시민들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즐겨 먹는 크루아상(Croissant)이다. 그리고 빈 시민들은 서둘러 퇴각한 오스만 튀르크군의 진지에서 매혹적인 향이 나는 검은 콩이 가득 담긴 포대(包袋)를 여럿 발견했는데 포대 속의 검은 콩은 다름 아닌 커피 원두였다. 커피의 강렬한 맛과 향에 매료된 빈 시민들이 커피를 끓여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는 본격적으로 온 유럽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처럼 오스만 튀르크의 빈 침공은 유럽 식문화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왼편: 크루아상, 촐처: 나무위키, <크루아상> / 터키 커피, 출처: Istanbul Tourist Pass, <Turkish Coffee>


만약 두 차례 위기에서 유럽인들이 승리하지 못 했다면 유럽은 이슬람화 됐을 것이고 기독교 문명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 승리했지만 이슬람 세력을 겨우 저지시켰을 뿐 유럽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 했다. 


8세기와 16세기 두 차례 침입 이후 이슬람 세력은 수백 년 동안 유럽 일부(이베리아 반도, 동유럽과 지중해에 일부 섬들)를 점령하고 식민지배 했다. 역사상 유럽 본토를 장기간 식민지배한 이민족은 이슬람 세력이 유일하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원초적인 이슬람 공포가 자리 잡았다. 


유럽에 남아있는 이슬람 지배의 흔적 / 왼편: 후기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 코르도바, 오른편: 마지막 이슬람 왕조 나스르 왕조의 알람브라 궁전 / 출처: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촬영


근세 이후 유럽의 힘이 이슬람권을 압도하면서 유럽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멸시와 혐오로 변해 갔다.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악감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품고 있는 민족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워낙 쌓인 것이 많아 묵은 원한을 설욕하고 싶은 마음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욕하고 비하하지만 상대의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잘 아는지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대상,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숙적, 우리민족에게 일본이 그렇듯 유럽인들에게 눈의 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이슬람이다. 





<제 4 장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과 이슬람 테러리즘의 탄생 0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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