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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Apr 29. 2024

<이라크 전쟁>의 불편한 진실 02

이라크 전쟁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과 실상

표지 사진: 이라크 주요 유전 지대 분포도 / 출처: 이재윤, '이라크 주요 유전 및 정유시설', <연합뉴스>, 2014-06-19 





제 2 장  전쟁의 원인 02



둘째,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는 석유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 위키백과, <콜린 파월> 

전쟁 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 1937~2021)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목적은 결코 석유가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라크 전쟁의 본질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자원전쟁이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이라크가 보유한 석유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매우 높다. 이라크 석유 매장량은 1,150억 배럴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당시 이라크는 석유 매장량 순위 세계 2위에 올라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 유전이 속속 발견되면서 순위가 많이 밀리기는 했어도 2012년 기준으로 여전히 이라크는 석유 매장량 세계 5위를 자랑한다.(참고: 세계 석유 매장량 순위: 1위 사우디아라비아(2,626억 배럴), 2위 베네수엘라(2,112억 배럴), 3위 캐나다(1,752억 배럴), 4위 이란(1,370억 배럴), 5위 이라크(1,150억 배럴) - 출처: CIA, The World Factbook, 2013)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체계적인 탐사만 이루어진다면 이라크에서 1,000~1,500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양도 양이지만 이라크 석유는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라크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카본(carbon) 함유량이 높은 대신 유황(硫黃) 함유량이 매우 낮은 고품질의 경질유(輕質油)다. 그리고 지표면에 아주 가깝게 묻혀 있어서 채굴이 용이하고 채굴 비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그만큼 경제성이 높다는 뜻이다. 


루마일라(Rumaila), 마즈눈(Majnoon), 키르쿠크(Kirkuk), 할파야(Halfaya) 등 이라크 유전지대 유정(油井)의 깊이는 지하 600미터 안팎이다. ‘석유 위에 떠 있는 도시’라고 불리는 북부 유전도시 모술(Mosul)에서는 손으로 땅을 긁기만 해도 석유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2009년 기준으로 이라크 유전지대의 채굴 비용은 배럴당 1.4달러에 불과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다. 원유 1배럴을 채굴하려면 인근 서아시아 산유국은 5달러, 러시아는 10달러, 서부 텍사스 지역은 2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출처: Reuters, Factbox - oil production cost estimates by country, 2009)


화염을 내뿜고 있는 서아시아 유전 @ 연합뉴스


그러나 미국이 단지 이라크 석유 이권만을 노리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을 통해 보다 큰 것을 얻고자 했다. 미국이 이라크 석유에 눈독을 들인 것은 경제적 가치보다도 정치적 의미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인 미국 입장에서 이라크 석유를 통해 얻는 수익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부차적인 전리품이었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서아시아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력 회복이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석유자원(그중에서도 특히 서아시아 석유자원)에 통제력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이었고, 그 힘은 미국이 세계패권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 중 하나였다. 


20세기 내내 석유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이었고 21세기에도 석유의 중요성은 감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석유는 전 세계 매장량의 약 65퍼센트가 서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 The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12개 회원국의 석유 매장량을 모두 합치면 전 세계 매장량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석유자원은 7 majors(혹은 7 sisters)라 불린 영미 석유회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 석유개발권의 약 85퍼센트를 소유했었다. 사정은 이라크도 마찬가지여서 1972년 6월 1일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가 단행되기 전까지 이라크 석유 이권의 약 75퍼센트가 영미 석유회사들의 수중에 있었다. 


그런데 서아시아에서 자원민족주의 바람이 일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서방에 맞서기 위해 서아시아 국가들은 속속 석유산업을 국유화했고, 영미 석유회사들은 서아시아 지역의 석유 이권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세계를 휩쓴 오일 쇼크(Oil Shock)는 서방세계에 커다란 타격을 안겨 주었다. 오일 쇼크는 석유가 단순히 값나가는 천연자원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OPEC의 영향력은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과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을 두둔하는 서아시아 정책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1970년대 시작된 영미 석유 메이저들과 OPEC 간의 석유 통제권을 두고 벌어진 지루한 힘겨루기는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영미 석유회사들은 서아시아 지역 석유개발권의 약 40퍼센트만을 소유할 뿐이었다. 더구나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사담 후세인 때문에 영미 석유회사들은 이라크 석유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1991년 걸프 전쟁(The Gulf War, 1990.08.02. ~ 1991.02.28.) 이후 이라크를 옥죄던 UN의 경제제재가 1996년 일부 완화되자 사담은 1972년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 이전에 영미 석유회사가 가지고 있던 이라크 주요 유전 개발권을 프랑스, 러시아, 중국 석유회사들에 넘겨 버렸다. 


미국이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할 리 만무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통해 석유자원을 강탈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OPEC의 영향력을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점령 직후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을 5년 내에 1일 1,000만 배럴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FRB 의장 / 출처: 위키백과, <앨런 그린스펀>

전쟁 직전 이라크에 산재한 73곳의 유전 중 단지 15곳만이 정상가동 되고 있었다. 이라크 석유산업의 성장 잠재력으로 보아 정세 안정과 체계적인 기반시설 투자만 뒷받침된다면 미국의 증산계획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 계획이 실현된다면 하루 3,300만 배럴 정도의 원유를 생산하는 OPEC의 영향력은 급속히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세계패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반쪽만 행사해 온 서아시아 지역 석유 통제력을 독차지하려 했다. 미국은 전쟁만이 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계평화나 민주주의 같은 거창한 핑계를 내세웠지만, 결국 미국을 전쟁으로 이끈 것은 석유에 대한 탐욕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The Federal Reserve Board) 의장을 역임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1926 ~ 현재)은 퇴임 후 집필한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이 모두가 알다시피 석유와 관계된 전쟁이었음을 인정하기가 정치적으로 불편했다는 사실이 슬펐다.”라고 고백했다.


      

셋째,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세계패권을 유지하고 경쟁국들을 견제하고자 했다. 냉전 종식 후 10년간 미국은 승승장구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국제 질서를 자국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했고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의 독주에 맞서지 못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9․11 테러는 모든 것을 뒤바꿔 버렸다. 미국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세계 각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지속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은 한층 더 독선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부시 대통령은 전 세계에 “우리 편에 설 것인지, 테러리스트 편에 설 것인지(Either You are with us or you are with the terrorists.)”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을 통해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미국은 세계패권 유지를 위해 부시 독트린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9․11 테러로 손상된 미국의 위세를 회복하고 적대세력과 경쟁국들의 도전의지를 사전에 꺾어 버리려고 했다. 


미국의 적극적 군사행동은 공공연히 반미를 외치는 베네수엘라(Venezuela)의 차베스 정권이나 은근슬쩍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중국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 


9․11 테러 사태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미국은 주저하지 않고 이라크 침공을 단행했다.




<제 3 장  전쟁이 남긴 어두운 유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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