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움직이기

회화과 19학번 김재유

by HOHU

날이 좋은 요즘, 드로잉을 하며 학우와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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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로잉 북은 언제 샀나요?


올해 1, 2월에 산 것 같아요. 지금 거의 다 썼어요. 6개월이면 다 쓰는 것 같아요. 광화문에 교보 문고 가서 샀어요. 거기가 이제 성지잖아요. 쓱 봤는데 이 친구 괜찮은 거예요. 일단 전 무지여야 해요. 그리고 커버지의 색깔, 이 두 가지만 충족하면 상관없었어요. 책 뒷장에 독일어로 등대, 라이트하우스 라고 쓰여 있어서 이걸로 샀습니다.


-드로잉 북을 파란색 커버로 고른 이유는요?


제가 좋아하는 색깔이에요. 처음에는 더 깨끗하고 예쁜 색깔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물건을 깨끗하고 예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까지 염두에 뒀죠. 어느 정도 사용감 있는 것들을 더 좋아하거든요. 옷도 웬만하면 새옷보다는 누군가가 썼던 물건들을 선호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색깔로 샀어요.

-종이는 무지, 좋아하는 색이면 오케이. 너무 단순한 접근 아닌가요?


맞아요. 그래야 다양한 걸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딱 모아놨을 때, 되게 들쭉날쭉해야 그걸 통해 취향의 흐름도 알 수 있고요. 아니면 정말 표지에 막 그런 게 있어도 돼요. 어디 교회. 오히려 그런 게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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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도구로 그리실 건가요?


최근에는 컴싸(컴퓨터용 사인펜)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다른 재료랑 사용할 때 컴싸가 재미있게 조응하는 부분도 있고, 그냥 뭔가 싸구려 느낌이 좋아요. 또 이게 싸다 보니까 막 다룰 수도 있고. 아직은 막 다루면서 여러 가지를 해봐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요.

옷도 비싼 옷으로만 다 입으면 오히려 느낌이 안 나거든요. 드로잉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비싼 옷 몇 개 있더라도 그 사이를 메우는 베이직한 친구들이 있어야 하나의 착장에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드로잉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드로잉은요. 제가 좋아하는 성시경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태도를 연습하는 것 같아요. 맨 처음엔 어떤 느낌으로 화면을 채워나가야겠다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어요. 하지만 늘 좌절돼요. 화면 앞에 서면 늘 그렇기 때문에,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되는 상황이 있단 말이에요. 그럴 때 제가 그리는 것들이 있어요. 마치 누에가 실을 뽑듯이. 타고 태어난 그 습관을 가장 관측하기 좋은 게 드로잉인 것 같아요.


또 드로잉은 재미이기도 하죠. 캔버스 하나 만들기 너무 힘들잖아요. 아무래도 그걸 대할 때는 부담이 있어요. 여기선 훨씬 더 가볍게 막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유희적으로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습된 유희는 좀 더 크고 제대로 된 재료에서 나오기에도 더 용이해요.


-드로잉을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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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넘기며) 저는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을 그려요. 지인이나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그려요. 드로잉은 그런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만 굴리던 형상을 종이에다가 펜으로 얹었을 때 이어지는 것. 그런 느낌으로 글도 써요. 일단 뭔가 언어로 표현해 보다가 이어지는 거죠.


(글을 읽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악필과 드로잉은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생각해 보면 드로잉도 점과 선으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그래픽이거든요. 근데 글씨는 의의를 전달하는 드로잉이라면 악필은 실패한 드로잉일까요?”


또 다른 글도 있어요. 이 글은 미끄럼틀에 제가 앉아서 쓴 거예요. “그 앞에 얼굴은 이미 알아요. 맨날 거기서 프리킥 연습하시는 할아버지예요. 근데 프리킥을 찬다는 것만 알았지, 그분이 왼발잡이인지 오른발잡이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쭉 쓰다가 뭔가 재밌는 부분이 또 나오면 그게 단초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늘 상대방을 웃기고 싶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작업이 너무 딱딱하지 않았으면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좀 더 관객에게 다가가기에 용이하지 않을까요?


-이제 4학년이자 졸업 전시를 앞두고 계시잖아요. 어떤 그림인지 궁금해요.


그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저도 어디까지 제 생각을 실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거는 너무 많거든요. 장담은 못 하지만 사건을 발생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있어요.


-되게 위험하게 들리는데요.


(놀라며) 그건 사고. 사고를 치고 싶다기보단 사건이요. 보통 우리가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당황스러운 느낌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졸업 전시회고 그림이 있네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졸업 준비하면서 학교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꼭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기보다는 적당히 거쳐오면서 잘 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이 힘들다고도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주어진 것들이 되게 과분할 정도로 많다고 느끼고, 그래서 힘들다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너무 감사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때그때 오해를 하더라도 “아니다. 그건 진짜 잘못됐고 늘 감사해야 한다. 넌 지금 너무 좋은 환경에 있다.” 이렇게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실제로도 안 힘들었어요. 저는 재미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여태까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재미가 있었다는 거겠죠.


또, 단순해져야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들고 있는 게 없어야 뭘 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문제를 질질 끈다고 해서 그게 그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고 일어나면 그 일이 별거 아닌 거일 수 있고, 또는 그 일에 대한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날 했던 생각을 한번 삭제할 필요가 있는 거죠. 어느 정도 망각하고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상태여야, 문제에 대해서 멀리 바라볼 수 있고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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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아무 말 있을까요?


모든 콘텐츠는 다 누군가의 노고가 들어간 결과물이니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콘텐츠에는 항상 누군가의 노고가 들어가 있죠. 사실 주변에 너무 많은 콘텐츠가 둘러싸고 있어서 모두가 더 둔감해진 것 같아요.


아마도 작업을 하며 콘텐츠를 생산할 사람으로서, 저는 어떤 콘텐츠를 바라볼 때 창작자의 손길과 시간, 그리고 생각이 되게 켜켜이 쌓여 있는 결과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그런 거를 볼 때, 좀 더 잘 읽어봐 주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저희도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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