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 앞에서 펼쳐본 일기에는
난 21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24살이 되어 그 기록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전에도 종종 일기장 앞면을 훑어보고는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읽은 20대 초반의 이야기는 나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사소한 감정과 사건들이 정신없이 활보하는, 그 한 장 한 장이 나의 눈에 너무나도 반짝여 보이는 것이다.
새삼 알게 되었다. 그때의 시간들이 현재의 나에게 그렇게 보이듯이, 지금 내가 스쳐가고 있는 이 날들도 후에는 이들과 다름없이 반짝이고 있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그것들이 지닌 빛을, 지난 일기를 다시 읽는 시점에 와서야 알아차리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일상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빛나고 있음을, 나아가 당장이라도 더욱더 반짝이게 만들 수 있음을 늘 기억하면서 살기로 했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스스로 어떤 확신을 가진 채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어느샌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뒤돌아 다시 보니 여기까지 길을 내어 왔음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비록 그 모양은 구불구불하더라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20대 한가운데에 서있다. 그래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불안이라는 감정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명확히 결정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것만 같은 기분에 이따금씩 막막해지기도 한다.
가까이서 보면 나의 일기는 흠집 투성이다. 어떤 날은 설렘으로 가득 차지만, 또 어떤 날은 글자 하나하나에 버거움이 묻어난다.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던 과거의 나와 단어 조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그럴 때 나는 지금의 힘듦을 일기장 속 작은 점으로 본다. 아주 아주 멀리서 본다.
일기를 쓰다 보면, 그래서 그렇게 모인 나의 기록들을 다시 보면 웃기게도 과거에는 마치 거대한 돌덩이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참 조그맣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일상의 흠집들도 언젠간 그렇게 조그마해질 것을 잘 안다. 신기하게 그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고, 아픈 일이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다.
작은 점은 멀리서 봤을 때 추억이 내뿜는 빛에 섞여 그 모습을 띄지 않는다. 내가 일기를 다시 읽고 지난날의 반짝임만을 포착했듯이 말이다. 결국에는, 지금 나의 일기에 찍히는 점들도 그 빛들과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학생으로서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온 나는, 가끔 지난 일기 속의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치 아끼는 여동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머금게 된다. 그만큼 성인이 된 후로 나는 참 많은 곳들을 돌아왔으며, 동시에 나름대로 변화하려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덧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어릴 적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공감하듯, 어른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많이 서툴고 어리다. 조금만 삐끗하면 바로 움츠러드는, 아직 무르디 무른 사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내가 손으로 기록한 문장들이 아주 뚜렷이 말해주고 있었다.
일기를 읽고 있으면 스스로에 대한 조금의 확신이 생긴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와 4년 후의 나도 분명 다른 사람일 거라는 확신. 그렇게 한발 한발 움직이다 보면 언젠간 어린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
그래서 앞두고 있는 졸업이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아직 마주하지 못한 내가 저기 너머에 기다리고 있고, 그 길로 나아가는 여정은 언제나처럼 빛날 것을 이제 잘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