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

팔백 칠호의 옆집은 팔백팔 호

by HOHU

음, 그때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우리 집은 현관문과 내 방 창문이 마주보는 구조이니까,

음, 그때 b와 h와 d는 무얼 했지?

맞바람이 불었다.

그 여름은 에어컨 없이도 시원했고,

심지어는 선풍기를 켜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그 작은 손으로 종이를 잡아가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b와 h와 d는 그림을 그리는 내 옆에 있었거나 복도에 있었거나 팔백팔 호에 있었다.


팔백팔 호.

음, 그러니까, 우리 집이 팔백칠 호니까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둔 우리 옆 집.

내가 한국 나이로 한 살에 -실제로는 몇 개월만에-

우리 아파트의 오 층에서 팔 층으로 이사 왔다고 하는데,

이는 안방에서 찍은 한 살 무렵의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팔백팔 호와 팔백칠 호는 이십삼 년째 이웃


그 이후, 나와 b와 h와 d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b는 새벽마다 –굳이-

우리 집 앞 복도에서 노래를 불러대어 -가수를 꿈꾸었나?-

우리 집 새벽 소음의 원인이 되었고

-물론 s가 한 번 나가서 타이른 이후 그 버릇은 고쳐진 것 같다.-

h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최근에는 다리를 다쳤고.

d는 알다시피. 열심히 투닥거리고, 가끔 많이 사랑하고.



우리 집과 팔백팔 호는 신발을 신고 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를 건너야만 당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하나의 아지트였고, 넓고 복잡한 놀이터였다.

팔백팔 호 대문 안에 있는 팔 층 옥상은

우리가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이것도 어린 시절의 내가 옥상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팔백팔 호의 안방에는 이층 침대 밑에 또 침대가 있었다.

그 침대는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었는데-

음, 그러면, 그건 총 삼층 침대인가?


이층 침대 중 아래층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다리를 올리고 있다가

한 층 더 아래에 있는 침대로 데구르르 굴러내려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 집과는 다른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

목과 코 사이 어딘가를 눌러서 내는 듯한 높은 h의 목소리.

음, 베란다가 있었던가?

음, 우린 그 긴 시간을 무얼 하고 놀았지?

어떤 기억은 각인된 듯 선명하고

어떤 부분은 존재조차 남아있지 않는다.


얼마 전 l은 팔백팔호 할머니가 주무시던 중 심정지가 왔다 깨어나셨다고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짧은 시일 내에 이별을 하게 될까 걱정하며 지하철을 걷다 눈물을 한 번 흘렸다.

나는 딸기라도 사서 갈까, 생각했고. 생각만 했고. 생각은 이내 다른 생각으로 덮였다.





그리고 오늘,



그 많은 숫자와 사람들 사이에서 팔백팔 호 할머니를 어떻게 찾지.

우리는 그렇게 오래 -함께- 살았음에도 할머니의 이름을 몰랐다.

문민자 할머니 - 혀 안에서 이름이 낯설게 맴돌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팔백팔호 할머니였는데

할머니는 사실은 문민자 할머니.

문민자 할머니,

할머니는 문민자 할머니.

문민자씨는 문민자씨.




l은 할머니가 언제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며 울었다.

엄마같기도 친구같기도 한 엄마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사람이 있다.

너무 오랜 세월 반복하면 듣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고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켜켜히 쌓인 딱지처럼.


할머니는 l 있어? 하며 봄 여름 가을이면 현관 방범망 사이로 눈을 맞췄고 겨울에는 문을 두들겼다.

설이나 추석이면 명절 음식을 나누었고-우리는 이미 며칠 간의 명절 음식에 질려있었지만-

겉절이를 하면 겉절이를, 김장김치를 하면 김장김치를 나누러 l을 찾았다.

어떤 날은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 어떤 날은 음식 재료가 부족해서.

가끔은 커피를 마시러 드나들고 때로는 예쁜 꽃을 복도에 내놓은 것을 알리러 문턱을 넘었다.



언제나 할머니네 접시 하나 정도는 우리 집에 있었다.

그럼 l은 접시를 가득 채워 다시 돌려주고

그 접시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돌아가고

돌아오고


그리고 오늘 그 접시는 우리 집에.

접시 하나 정도는, 우리집에.

접시를 가득 채워 돌려주어도

이제 우리집 문을 두드리며 l을 찾는 문민자 할머니는 없다.


b에게 괜찮냐고 묻는 대신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대신

눈물을 삼키며 어깨를 두들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그리며 함께 노래를 부르던 우리는 없고,

어깨를 두드리며 슬픔을 흘리는 우리만 있다.


문민자 할머니

민자 할머니



나는

잊기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면서도

너무 많이 잊고

또 너무 많이 기억한다.



홍아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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