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 호소 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바쁘게 사는 지인이 나에게 그런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요즘은 낮보다 밤이 더 좋다고, 낮의 정신없는 일상과 생동감보다 조금이나마 고요하고 차분한 밤하늘이 좋다고 말이다.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라면,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세상을 제작자가 바라본다면 만든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며 성낼지도 모를 일이다. 고요함의 시간으로 만들어낸 밤에 불을 비춰가며 일하고, 공부하고, 낮에 못다 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면서 말이다.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하여, 포기하지 않고, 그리고 마침내 성공. 세상 모든 자기개발서가 사랑해 마지않는 단어들이다. 설사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열심히 사는 게 싫고, 성실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게 싫고, 어떤 일을 할 때 쉬엄쉬엄하는 스타일이라 할지라도 저런 가치들을 표방하는 사람인 ‘척’은 필요하다. 그게 우리 사회가 ‘어른스러운’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가치니까. 가치라는 것은, 옳고 그름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는지로 결정되니까.
우리의 가치는 불완전하며, 동시에 불가지론적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긍정적인 삶의 모습인가? 알 수 없다. 효율적으로 사는 것은 훌륭한 인생인가? 역시 알 수 없다. 누가 그것을 긍정적이라고, 훌륭하다고 정의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다른 이들의 행동이 가지는 가치를 판단하려는 행위는 건방진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라는 틀에 그 역할을 전가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 그렇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무거운 짐을 다수에게 넘기는 순간 나의 책임은 ‘n빵’ 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더라,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더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의 입을 빌려서, 대중의 입을 빌려서 재창조된다. 무거운 짐을 덜어버리고 나니, 가벼워진 책임감은 더욱 무차별적인 말과 행동의 시발점이 된다. 우리 사회는 ‘열심 호소 사회’가 되었다.
바야흐로 열정 과다 사회에 찬물을 끼얹을 시간이 도래했다. 역사적으로 혁신과 개벽, 회귀와 복구는 결여에서 시작되었다. 16세기 새로운 연료로 석탄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기존에 연료로 사용하던 나무가 대부분 벌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전부 소진해버린 것은 여유다. 우리는 이제 여유롭지도, 여유로울 이유도 없어졌다.
바쁜 나에게 취하지 말자.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지 말자.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벅찬 듯이 이야기하며 뿌듯해하는 그런 행동, 그만두자. 좋은 결과물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여유는 방임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여유가 아닌 무책임이다. 해야 할 일을 최선의 효율로 한다면 여유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럼에도 여유가 삶에 찾아오지 않는다면, 크기를 줄이는 대신 몇 개를 도려내자. 멈칫하지 말고, 어서. 고뇌와 인고의 시간이 지난다면, 여유는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쁘게 사는 지인에게 나는 그런 말을 전한 적이 있다. 나는 밤보다 낮이 좋다고, 고요한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 햇살을 받으며 여유로운 하루를 만끽하는 그 시간이 좋다고 말이다. 그 아름다운 시간에 살아본 기억이 희미하다면, 파리의 시간을 사는 대신 함께 우리의 시간을 걷자, 그렇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