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인터뷰 걸음마 1년차

by HOHU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인터뷰어로 들어왔지만, 초기에 포토가 부족하여 내가 직접 인터뷰이의 사진까지 촬영했다. 당시 알게 된 것은 내가 누군가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그만의 얼굴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음은 ‘시간’ 덕분이라는 것도 알았다. 시간은 ‘응시’를 통해 축적한다. 응시하기 위해 질문한다. 동태를 살핀다. 시간을 들일수록 무언가를 사랑하게 된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비단 나뿐만인가. 나를 아프게 하는 누군가도 오랜 정으로 끊어내기 어려운 건 다 시간이 저지른 짓 아닌가. 사랑은 시간과 비례한다.


진정성만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이야기가 나는 참 좋아서 한 편에 2,000자고 3,000자고를 써 내렸다. 그래, 읽히지 않는 글이었을 테지. 엄청난 후킹을 만들어도 누군가의 3분을 끌어오기란 어렵다. 전하고픈 이야기를 다룰 때 분량이 누군가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균형해야 한다. 매체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진정성에 치우치기 쉽다. 특히 글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하나하나 아끼는 마음이 짙을수록이다.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글자는 버리고 여운으로 채워야 한다. 창작자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것’ 사이를 타협해야 한다.


진정이 100이면 그 자체로 나무랄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안 읽는 사람이 단지 멋진 이야기를 놓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00의 진정을 내놓아도 한 줄 읽히지 않는다면 그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 혼자 만족하는 자폐다. 나는 굶어 죽은 비운의 작가가 될 생각이 없다. 일단 전하기 위해 쓴 글이라면 읽혀야 하고 보여야 한다. 읽힐 기회라도 얻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러니 당분간은 100이 아니라 20의 진정을 담고선 70의 여운으로 채울 수 있는 글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10은 모든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단 아쉬움일 테고, 고독한 풍요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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