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요한 것은 깨어 있을 때 하는 일
니체의 철학에서 ‘깨어 있음’은 단순한 정신적 각성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하는 능동적 인간의 태도를 의미한다. 니체는 인간이 관성과 습관 속에 잠겨 아무런 판단 없이 살아가는 상태를 가장 위험하다고 보았다. 흐름에 떠밀려가는 삶은 편안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반대로 방향을 점검하고 스스로 이유를 묻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체로 깨어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보내는가가 아니라, 깨어 있는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니체가 말한 자기 창조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싫었다.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고, 습관이 다음 습관을 이어가며, 선택 없이 떠밀려가는 삶은 겉보기에는 편안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력함만을 남겼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굴러가는 톱니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저항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삶에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희미해졌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멈춰 서서 내 방향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으면, 나는 금세 흐름에 잠식되어 버릴 것 같았다. 번거롭고 불편한 시간이었지만 이 점검의 순간만큼은 확실히 내가 깨어 있는 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성장했던 순간들은 언제나 이 깨어 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공부를 처음 선택했을 때도, 의대를 목표로 삼았다가 다시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도, 그리고 결국 현재의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나는 남이 만들어 놓은 흐름을 따라가지 않았다. 반드시 한 번은 멈춰 서서 내 방향을 다시 그렸다. 그때의 나는 단순히 삶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능동적으로 밀어가는 사람이었다. 니체가 말한 자기 창조가 바로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나를 바꾼 것은 언제나 내가 의식적으로 방향을 점검하고, 흐름의 속도를 조절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길로 전환하려 했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는 나의 욕구, 두려움, 가능성이 동시에 드러났고 나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방향성 점검은 단순한 계획 세우기가 아니라 삶을 다시 붙잡는 행위였고, 깨어 있는 상태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가가 아니라, 내가 깨어 있는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흐름에 떠밀려가는 시간은 나를 만들지 않는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방향을 다시 잡고 삶의 핸들을 직접 쥐는 그 짧은 순간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흐름에 잠기지 않기 위해 멈춰 서서 나의 방향을 확인할 것이다. 깨어 있는 시간만이 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