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되고 싶은 나를 연기하다 보면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인간은 이미 정해진 자아를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을 행동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정체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니체가 말한 ‘연기’란 거짓이나 위선을 뜻하지 않고 아직 도달하지 않은 형태를 행동으로 먼저 살아보는 실험에 가깝다.
나 역시 한때 외향적인 나를 연기하듯 살아본 시기가 있었다. 본래 내향적인 성향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외향적으로 보였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려 애썼다.
결과적으로 나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내향적인 성향으로 돌아왔고 혼자 있는 시간의 필요 역시 여전히 컸다. 하지만 그 경험을 실패로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성격은 돌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익힌 대인관계의 기술과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해본 경험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처음 말을 꺼내는 법,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태도,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요령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일부를 내 삶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연기의 목적이 정체성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자기 삶에 남길 수 있느냐다. 연기는 한 번의 선언이 아니라 시도와 조정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선택하는 일이다.
그래서 “되고 싶은 나를 연기하다 보면”이라는 말은 나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는 요구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실험해보고 그 결과 중 유효한 것만을 삶에 남기라는 제안에 가깝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그 연기를 통해 지금의 나를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