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만의 길을 찾아라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며 한 가지 사실을 쉽게 단정하지 못한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나만의 길’을 걸어온 것일까? 어떤 선택은 분명히 내 안에서 나왔고, 어떤 선택은 환경이나 분위기에 밀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확신의 선언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선택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며 그 안에서 어떤 방향성이 있었는지 찾아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중학교 시절 나는 요리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건넸을 때 바로 반응이 돌아오는 그 경험이 좋았다. 내가 움직이면 상대가 달라지는 순간, 그 즉각적인 변화가 나를 기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꽤 이른 시기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혼자 가기에는 용기가 부족했고,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빠지자 나도 흔들렸다. 그 결정은 나의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 내 망설임과 주변의 영향이 만든 결과였다.
고등학교 진학에서도 나는 조금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항공과학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그 선택에는 강한 확신보다 현실적인 고려가 더 컸다. 결국 체력 전형 탈락으로 자동 배정되어 일반고에 갔고, 이 결정은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반고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순간만큼은 분명한 내 선택이었다.
그때 나는 공부를 ‘선택’했다. 성적을 올리고 싶어서라기보다, 내 삶을 내가 움직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모님께 기숙사 학원에 가겠다고 말했고, 한 달 동안 집중하면서 성적이 오르자 의대를 목표로 삼았다. 의대라는 목표는 사회적 정답에 가까웠지만, 그 방향이 내 성향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 진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천이나 주변의 조언이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대학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나의 성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누군가의 변화로 연결되는 경험. 나는 그런 구조를 좋아했고, 내 진학 역시 그 방향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항상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선택에는 흔들림도 많았고, 환경이 방향을 바꿔버린 적도 있었고, 부족함 때문에 주저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선택들 속에서도 한 가지 일관된 방향만큼은 존재했다. 내가 직접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원해왔다는 사실이다. 요리는 그 성향을 가장 먼저 드러냈고, 공부도, 목표도, 대학 선택도 결국 그 방향 속에 있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니지만,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꾸준히 애써온 사람이다. 길이 흐트러지고 돌아가더라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