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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코코 Dec 28. 2023

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금액은 1억.


어제와 오늘에 걸쳐 5천만 원씩 내 손으로 날랐다.

그나마 1억 3천이 될 뻔한 것에서 1억에서 멈춘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검찰과 금감원 사칭은 유명한 수법이라던데, 나는 왜 몰랐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아빠의 반응은 이랬다.

“네가 어떻게 1억을 맘대로 줘? 거짓말하고 있어”

“그럼 네가 지금 혼나야지, 잘한 게 있어?”

“그럼 끊어”


스스로도 잘못했다고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는

이중 삼중으로 아프게 꽂히는 말이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자책하지 말고, 과거의 일이고 아직 젊으니 앞으로 다시 벌면 된다고.

몸 건강히 돌아온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픈 말이어야 진실이라고 느끼는지

아빠의 나를 지적하는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돈다.


자산 계산을 해봤다. 현금 2천, 적금 3천이 빠지고, 신용대출 5천60까지... 1억을 뺐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빠진다.


돈을 번 시간만큼 과거로 돌아가 그동안의 시간이 무의미해진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돌려 미래에 벌 돈을 미리 강탈당한 것 같기도 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1억은 너무 절대적인 돈이라,

그렇게는 잘 생각이 되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다. 아직도 누가 이게 거짓말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잠들어서 내일을 맞아 오늘이 현실이 되게끔 하고 싶지 않다.

아니면 자고 일어나니 이 모든 게 꿈이었다는 시나리오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내 손으로 5천만 원, 5천만 원이라는 현금을 가져다 바친 것이

어제오늘 내가 나의 의지와 판단으로 한 행동임이 맞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일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자각을 하려고 해도 믿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지만

이렇게 일기를 쓰면서 내 뇌에 각인시켜 본다.


이건 사실이고 벌어진 일이고, 이제는 그만 인정하라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얼마면 다시 이 돈을 벌 수 있을까?

얼마가 원래 없었다고 생각해야 지금 이 돈이 원래 없는 돈이라고 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뇌의 고통을 덜어보고자 하는 내가 있다.


똑같은 소리를 중언부언하고 있는데,

오늘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뭐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부동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자러 가서 멍하니 누워있고 싶지도 않다.

계속 이렇게 주절주절 일기를 쓰고 있다.


처음 사기란 걸 알았을 때도 그랬지만

불쑥불쑥 죽고 싶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도피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내가 벌인 일이 현재 진행형으로 흘러가고 앞으로 내가 그로 인한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끔찍해

그만 이 세상에서부터 도피하고 싶은 것 같다.


하룻밤 자고 나면 뭔가 달라질까?

나에게는 큰일이 일어났지만 여상하게 흘러가는 주변 모습은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어제오늘 보이스피싱에 잔뜩 휘둘리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이 밀려있는데..

내일은 오전만 근무하는 날이라 시간도 없어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담스러운 마음은 있지만 오전이 빨리 지나가려나...


내일이 오는 게 무섭다.

시간이 흐르며 이 여파를 감당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미래가 무섭다.

본가에 들어가면 죄인취급을 당할 것 같아 무섭다.

너무 큰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끔찍하다.


똑같은 소리만 계속하는 것 같으니 그만 일기를 마무리해 본다.


#감사하기

: 3번째 사기는 당하지 않고 경찰에 간 것

#너그러운 마음

: 나도 사람이고,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번엔 그 실수의 결과가 너무 컸을 뿐

#행복했던 순간

: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준 친구들과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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