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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하루 May 23. 2024

서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아이만의 언어에 닿을 수 있기를

"(내가) 얼마나 엄마를 좋아하는지 알아?"

아이와 자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가 된 후 엄마로서 아이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사랑과 세상에 있는 줄 몰랐던 나의 새로운 감정들에 감명받고만 있었을뿐, 아이가 나에 대해 가질 사랑의 깊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안식처이고 무조건적으로 의지되는 존재이니 안정감과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아이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클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늠해보려고 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의 이 질문을 들은 순간, '아 나의 사랑의 크기가 아이의 그것보다 당연히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고 오만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내가 아이를 생각하는 시간과 용량은 더 클지언정, 아이의 사랑 그 자체는 나의 사랑과 비슷할지도,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절대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황하며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사이 아이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엄마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와있어."

어른들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함축해 표현하는 이 따뜻하고 무한한 감정을 아이는 이렇게 어린아이의 단어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는 글이나 영상으로 부모의 무한한 사랑, 희생은 접할 기회가 많다. 어른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고, 어른인 우리는 어른의 관점에서 그런 말과 행동을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의 사랑은 말이나 글로 충분히 전달되거나 남겨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은 아이만의 세계에서 아이다운 언어와 행동으로 해맑게 사랑의 잎사귀를 하나 둘 흔적도 없이 흩뿌리고 다닐 뿐.

 

그런데 돌이켜보면 4살 아이의 행동과 눈빛, 표정에서 이미 무한한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의 우주 전체가 나에게로 향해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모든 것이 담긴 우주가 나의 품에 안기려 계속해서 애뜻하게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샤워하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짧은 시간에도 엄마를 칭얼대며 찾으면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열심히 재잘재잘 얘기하면서, 계속 역할놀이를 함께 하자 재촉하면서, 칫솔질도 목욕도 잠도 엄마와 함께 해야한다며 입을 삐죽이면서, 엄마와 꿈에서도 만나려면 손을 잡고 잠들어야 한다며 내 손을 꼭 잡고 잠드면서,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더 열렬한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마주하고 나니, 이따금씩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던 것이 미안해진다. 그리고 아이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엄마라는 이유로 나에게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주어서. 내가 부모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수 있었을까.


아이가 땅에, 공중에 흩뿌리고 있을 사랑의 잎사귀들을 모두 눈치채진 못하겠지만, 이따금씩 손에 올려놓고 그 감촉을 느끼고 향을 맡고 소중히 쓰다듬어주어야겠다. 나에게 보내는 서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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