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도 아이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프롤로그

by 고요한 빛

아이가 태어나고 만 3살 정도가 될 때까지는, 신체 발달 단계에 따라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할 여력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모든 집이 비슷비슷하게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4~5살 정도가 되어 이제 아이가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기관(일반 유치원, 영어유치원, 숲유치원, 몬테소리, 발도르프 등등)에 보낼 것인가’, ‘어떤 예체능(미술, 발레, 축구, 수영,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시작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엄마처럼 교육·육아 관련 서적을 보고, 유튜브로 여러 의사, 교사, 학부모들이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찾아보고, 유치원 입학설명회를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볼수록 혼란스러웠다.
그 이유는 책이든 영상이든 기관이든,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중요시하는 목표나 가치에 따라 결론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이의 영어 실력 자체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으면 유치원을 졸업할 때 아이가 어떤 레벨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 되느냐가 기관 선택의 기준이 된다. 반면, 아이의 자립심이나 탐구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몬테소리 교육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신체 활동이 창의력과 사회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숲유치원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나이에 따라 중요해지는 것이 달라지기도 했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의 엄마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엄마의 관점은 모두 달랐다. 입시에 가까워질수록 입시를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될 15~20년 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이전 어느 때보다 어른들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내리게 된 결론은, ‘어차피 모든 것을 잡을 수 없으니 기본부터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뇌 발달, 동기 부여, 미래 역량, 선진국의 교육, 독서 교육 등과 관련된 서적과 인터뷰, 연구 내용을 몇 년에 걸쳐 읽어보며 느낀 것은 적어도 유아기 및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놀이가 핵심이라는 점이었다.
이때 놀이란 마냥 즐거운 행위(예를 들어 놀이공원 방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관심 있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아 자발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를 통해 뇌 발달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고, 스스로 탐구하고 시도해보는 놀이 시간을 통해 작은 성취감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계속 배우고자 하는 동기, 호기심, 창의성을 얻게 된다. 또한 또래와 상호작용하면서 미래 역량의 핵심인 협력과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무엇보다 충분히 몰입하고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배움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므로,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 다음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독서였다.
어차피 미래의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이 머릿속에 지닌 지식으로 승부하는 세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필요한 콘텐츠를 소화해야 하는 ‘무한 배움의 사회’이다. 또 그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해석해 다른 사람과 협업하며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이어가야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지식을 떠먹여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결국 스스로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준비물을 챙기도록 해야 하듯,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은 스스로 글을 읽고 해석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이다.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독서는 그 자체로 아이의 배경지식을 늘려줄 뿐 아니라, 독서를 통해 이야기 구조나 지식 체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은 아이가 학교 교과서나 과목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에도 새로운 지식을 보다 편안하게 습득할 수 있게 한다.

독서 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관련 경험이나 실천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아이는 자신이 책 속에서 얻은 배움이 현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확인하며 더 책을 재밌어하게 되는 선순환 고리에 들어서게 된다. 그때부터는 부모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는 책의 즐거움을 느끼며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결국, 유년기에 놀이와 독서를 충분히 누린 아이는 학교 공부는 물론, 협업·소통·창의력·비판적 사고력 같은 미래 역량까지 자연스럽게 키워나간다.


정말 이상적인 결말 아닌가. 하지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6~7세, 적어도 초등학생이 되면 악기, 체육, 미술, 영어, 수학 학원을 골고루 다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는 학원 수업과 숙제에 쫓겨 놀거나 독서할 시간이 많지 않다. 놀이터에 놀 친구가 없어 학원에서 친구를 만나야 하는 웃픈 현실이며, 독서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또 ‘독서논술학원’을 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균형 있게’ 사교육 기관에 아이를 맡기면, 아이는 ‘빠짐없이’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사회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까?

아니면 적어도 학교에서 우등생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놀이와 독서보다, 사교육을 통해 배우는 지식과 기술이 정말 우리 아이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까?


사교육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좋아 보인다. 학습의 속도가 빨라지고, 눈에 보이는 성취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게 지식을 전달받는 방식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탐구하고 질문하는 힘은 점점 약해진다. 결국 단기 성취의 대가로 호기심의 뿌리를 잃는다면, 배움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과제로 남게 된다. 배움의 동기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사교육이 아이의 필요나 흥미에 따른 ‘보조 수단’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주된 방법’이 되어버린다면,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역량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배우는 내용이 복잡해지는 고학년이 될수록 성적도 점점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아이들의 공식’을 찾아다닌다. 어떤 우등생이 어떤 학원을 다녔는지, 어떤 커리큘럼으로 공부했는지를 참고 삼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미 ‘검증된’ 길이니 우리 아이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아이마다 기질과 흥미, 발달 속도, 환경이 다르다. 같은 수업, 같은 선생님, 같은 학원을 다녀도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결국, 다른 아이의 성공 방정식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내 아이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이다. 이 관점에서 확실한 것은, 불안한 마음에 ‘골고루’ 학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족해진 시간 속에서 아이의 고유한 흥미와 탐구심, 그리고 창의성·끈기·문제 해결력 같은 역량을 키워주는 ‘기본’이 쉽게 밀려나 버린다는 점이다.


나 역시 주변의 환경과 소리에 흔들릴 때가 많다. 그래서 육아와 교육에 대한 나만의 방향성과 원칙을 스스로 끊임없이 되새긴다. 같은 반 유치원 친구들이 악기나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엄마인 내가 괜한 고집을 부려서 우리 아이가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우리 아이만 뒤처져서 자신감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툭 건드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과 남겨둔 기록을 다시 펼쳐보며 나를 다독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돕는 것임을 되새긴다. 그 힘은 사교육이 대신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아이의 호기심과 탐구심 속에서 천천히 자라나는 것임을 믿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