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아닌 자율성이 자신감을 키운다

아이가 그림 앞에서 다시 당당해지기까지

by 고요한 빛

우리 아이가 5살이던 해 초여름, 나의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빨리 복직하느라 쓰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9개월의 육아휴직을 뒤늦게 누리고 있었던 때였다. 초콜릿 상자에 담긴 초콜릿을 하루에 한 개씩 꺼내 최대한 음미하며 아껴 먹듯이, 끝이 있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이와의 평범한 하루를 하나씩 까 먹고 있었다. 그렇게 충분히 많은 것만 같았던 9개월의 달콤함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는 복직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복직 후에 아이가 하원한 후 나와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때마침 아이의 친구 어머니가 같이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고, 집에서 도통 그리기를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미술활동을 하며 소근육을 발달시키면 좋을 것 같아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미술활동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친구들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이끌려 다니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평일 5일 중 하루는 미술, 이틀은 발레, 이틀은 놀이 돌봄 선생님과의 시간으로 세팅하고 회사에 복귀했다. 미술학원에서 그리거나 만든 작품을 보여주는 아이를 보면서, 집에서는 쉽게 제공해주지 못하는 다양한 재료들로 창작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미술학원을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전에는 혼자 그릴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들(곤충, 사람, 하트 모양 등등)이 그려진 스케치북 화면이 아이의 소근육, 예술감각과 창의성 발달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였다.


그런데 같은 해 겨울, 갑자기 아이가 미술학원을 안 다니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어느 날은 그리기가 재미없다는 것이었고, 어느 날은 친구가 불편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으니 - 사실 아이도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인지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 어떤 것이 정확한 원인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아이의 일관된 의사표현이 몇 주간 지속되어, 미술학원 선생님께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고 상의를 드렸다. 선생님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인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어리다보니 손이 여물지 못해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모양을 그려내지 못해 답답하고 힘든 것도 있을 것이고,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에 뚝딱 잘 그리는 친구도 있으니 비교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 위로 가끔씩 끼얹어지는 친구의 표현이 따갑게 느껴지는 때도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좀더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수업을 지도해보겠다고 하셨고, 나도 반년 만에 포기하는 것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복직을 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다시 변화를 주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좀더 미술학원을 다녀보자고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미술학원을 다니기 싫은 마음은 여전했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마음에 부담을 느끼나 싶어, 선생님의 권유로 수업시간도 옮겨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미술학원을 다닌 지 1년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1년이면 꽤 오래 시도하고 노력한 것이다. 그 중 반 년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도 계속 다닌 것이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이가 미술 시간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게 된 것이 아쉬웠고 그 기억이 앞으로의 경험이나 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내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미술 학원을 가지 않게 되자 오히려 집에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그리고 싶은 발레리나와 발레 무대를 매일 그리고 또 그렸다. 처음에는 자기가 그린 발레리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 얼굴 비율이나 팔다리의 두께, 길이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짜증 내고 울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대신 그려달라고도 했다. 그리기 시간은 거의 항상 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아 다음 날에는 이렇게, 그 다음 날에는 저렇게 그려보며 자신이 원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에 가깝게 그리기 시작했다. 공연 의상까지 만족스럽게 그린 발레리나의 얼굴에 마지막으로 눈코입을 그리다가 입이 얼굴선 밖으로 삐져나와 아주 속상할텐데도, 시무룩한 표정을 이내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되지”하고 자기 마음을 다독일줄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미술학원에서 배운 ‘사람 그리기 법칙’을 응용해 발레리나는 주구장창 그렸지만, 다른 사물이나 동물은 잘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는 그릴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미술학원에서 그려본 것 - 개미, 사람, 구름, 하트, 별 - 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그릴 수 있고, 다른 것은 자기가 그릴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 처음엔 못 하는거지. 연습하면 돼.” 하고 독려하려 해도 아이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림 하나하나에 아주 명확하고 엄격한 법칙이라도 있는 듯 그림 그리기를 대했다.


아이가 그 법칙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날의 저녁이었다. 언니 오빠들이 빙고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한글을 읽거나 쓰지 못한다. 빙고 게임을 하려면 상대 모르게 빈칸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게임 상대인 내가 대신 넣어주면 나와 게임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그림 빙고’를 하자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주제는 과일이나 우리집 부엌 또는 거실에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러자 아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자신은 사람, 하트, 별만 그릴 수 있다나.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이건 빙고 게임을 하기 위한 것이니 그냥 그림이 이상해도 무슨 과일이나 사물인지 말로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자 아이의 얼굴에 안도와 희망의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아이는 식탁, 의자, 냉장고, 에어프라이어기, 망고, 딸기, 귤 등 자신이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마음 놓고 그렸다. 드디어 ‘그리기 법칙 마법’에서 조금씩 풀려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나 아빠가 빙고 칸에 채워넣은 어처구니없는 그림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리는 거 별거 아니네’ 하는 아이의 마음의 소리가 아이의 밝은 얼굴 표정 사이로 들리는 듯했다.

그림4.jpg 아이가 그림빙고에 익숙해지면서 먼저 제안한 '패션'을 주제로 한 그림 빙고


한층 더 미술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때였다. 아이가 숙소에서 지겨워할 때 꺼내줄 요량으로 아이와 문구점에 들러 수채화 도구들을 사왔다. 팔레트에 24색의 수채화물감이 하나 하나 올라갈 때마다 아이는 황홀한 표정으로 ‘우와, 우와’ 하며 감탄했다. 색감 본연의 아름다움에 홀려, 하나하나 붓으로 듬뿍 찍어 스케치북에 치덕치덕 바르는 아이의 표정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났다. 날씨가 궂은 날엔 해수욕을 하지 못하니 아이와 근처 미술관을 방문하곤 했는데,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고요한 미술관이 담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그래도 아이는 자기대로의 속도로 그림들을 감상했다. 대부분의 그림들을 보는 둥 마는 둥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다가, 왠지 모르게 눈길을 끄는 그림 앞에서는 잠깐 발걸음을 느리게 끌기도, 질문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속도로 그림을 감상했다. 미술관을 다녀온 어느 저녁에 식사한 식기들을 식탁에서 치우자마자 아이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쓱쓱 자기 자신의 상반신을 그렸다. 검은색으로 얼굴, 눈, 눈썹, 코, 입, 하나로 묶은 머리를 그리고 살색을 찾아 얼굴을 칠할 때였다. 깨끗한 살색 물감에 머리카락과 눈을 칠한 검은 물감이 빠르게 번지며 얼굴 반이 군청색으로 물들었다. 예뻤던 얼굴이 흉하게, 무섭게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평소였으면 자기 마음대로 안 되었다며 인상을 가득 찌푸리거나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아이는 변해버린 그림 속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나 작가처럼 그렸지? 작가들은 사람 얼굴을 이렇게 그리더라고.”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그 의중이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담담하고 의연하다 못해 자랑스러운 표정이 서려 있다. 마치 자신이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작가처럼 그렸다는 아이의 말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 진지한 얼굴 앞에서 차마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지 못하고 입안에서 터져나오는 웃음 바람을 꾹 눌렀다. 그렇게 작가에 빙의한 아이는 자신을 얽매던 ‘그리기 법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한동안 물감을 번지게 하는 기법을 활용해 유리병에 담긴 제주 바다를 표현했다.

그림1.jpg


제주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긴 연휴 기간 집정리를 하던 중에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그린 그림이 몇 장 나왔다. 다 버리기에는 아까워 내가 몇 장만 추려 남겨놓은 것이었다. 아이에게 보여줬더니 아이가 대뜸 말한다. “그거 내가 그린 그림 아니야. 선생님이 이거, 이거 그려줬어.” 그러고보니 아이는 항상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온 날 나에게 뿌듯한 듯 보여주면서도, 내가 칭찬을 하면 명확히 선을 그으며 얘기했다. 이것만 자기가 그렸고 다른 것들은 선생님이 그려줬다고. 선생님이 동그라미 몇 개에 막대기를 그으면 개미가 된다고 하셔서 그렇게 그린거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학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여줄 때의 아이의 자랑스러운 표정은 점점 흐려졌고, 나도 그린 이가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그림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주어야 할지 점점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아이가 이렇게 자기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는 자기가 스스로 그리지 않은 그림을 자기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도, 그 그림에 대한 어른들의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지만 그림 앞에 선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가 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스스로 뭘 그리고싶은 의지가 원래 약했고 그래서 선생님의 관여도가 높아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이가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거나 친구들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더 그리기를 주저하게 되고, 그래서 선생님이 옆에서 더 도와주셨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 주관이 있는 아이라 선생님이 그리라고 하는 주제에 맞춰 그리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미술학원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게 도움이 안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아이는 수업에서의 활동을 통해 소근육을 발달시켰을 것이고, 원하는 형태를 자신이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촉각, 시각, 후각, 그리고 예술감각도 키웠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와 미술 수업을 다녔던 친구들은 아직도 즐겁게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아이가 타의가 아닌 자의로 자신이 그리고 싶은 형태의 그림을 그릴 때 더 순수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것. 오롯이 스스로 그린 그림일 때 그 실패와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패를 극복하기도, 성공을 마음껏 뿌듯해하기도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정해준 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따를 때 오히려 기대치를 자신의 수준에 맞춰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것.

아이가 도전정신, 끈기,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 앞에는 이 문구가 붙어야 할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얻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라고 말이다. 설령 아이들이 어른들이 섬세하게 짜준 틀 속에서 성공의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 경험은 온전히 그 아이의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아이마다 자율성과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작은 지시도 크게 느끼는 예민성이 높은 아이이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내성적인 아이는 좀 더 자신의 의견과 선택이 존중되는 환경이어야 그나마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무던하고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는 아이는 주어진 틀이 있는 환경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자율성을 좀 더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성향과 특성을 잘 파악하고 특히 사교육기관 같은 경우는 최대한 그에 맞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과 이어지는 연구 함께 보기>


1. 자율성은 자신감의 뿌리다.

사람에게는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기본 심리 욕구가 있고, 이 욕구가 충족될 때 내적 동기와 주인의식, 자신감이 함께 자라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Deci & Ryan, Self-Determination Theory, 2000)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2. 통제적인 지도는 아이를 단순한 ‘수행자’로 만들 수 있다.

정답을 따라 하게 하는 방식, 통제적인 피드백은 아이가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시켜서 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기조절력과 내적 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Grolnick & Ryan, 1989 / Reeve, 2009 / Flink et al., 1990)


3. 아이의 ‘기질’에 따라 자율성의 필요 크기도 다르다.

공포성(fearfulness)이 높거나, 노력조절(effortful control)이 낮은 아이일수록 통제적 환경에 더 크게 위축되고, 자율성 지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연구들이 있다. (Putnam et al., 2002 / Andreadakis et al., 2020 / Ryan & Deci, 2008) 자율성은 ‘모든 아이에게 같은 방식’이 아니라 ‘아이 맞춤’이어야 한다.


4. 선택권이 있는 미술은 아이의 목소리를 키운다.

유아 미술에서 결과보다 탐색·실험·표현 과정을 중시하는 ‘선택 기반 미술’·‘프로세스 아트’가 아이의 자율성, 자신감, 문제해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Hoover, 2018 / Journal of Creative Behavior 등)


5. 자율성이 지지될수록 아이는 더 오래 버티고 다시 도전한다.

자율성 지원을 받은 아이일수록 스스로 정한 목표 앞에서 더 오래 노력하고, 실패 후 다시 도전하며, 미루기와 회피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된다. (Reeve & Cheon, 2021 / Le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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