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실수,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살다 보면 종종 힘든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Dear Mr. Sung Gun Hong,
Thank you for your time and effort in applying for the position and your keen interest in joining us here. Unfortunately, the hiring team has decided to pursue other candidates at this time and will not be moving forward with your app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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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부터 다음 해 가을까지, 120통이 넘는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친숙해져 버린 문장들. 그리고, 거절에 익숙해져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 컴퓨터의 ‘Resume’ 폴더를 열어보니, 70개가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보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 상하이와 홍콩에 기반을 둔 인재 채용 플랫폼을 통해 제출한 온라인 지원서까지 합치면, 지원한 곳은 100군데를 훌쩍 넘는다.
상하이에있는 경영대학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졸업 후 6개월 안에 취업할 거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구직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형편없는 내 영어 실력 앞에서 하루하루가 좌절의 연속이었고, 그 쓰디쓴 좌절감을 8개월 넘게 견뎌야 했다. 15년 전 한국에서 IMF 직후 겪었던 구직난도 이때의 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왜 멀쩡히 잘 다니던 IBM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을까. 그때는 더 큰 성장을 꿈꿨지만, 지금은 그 결정이 나를 이렇게 힘든 길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괴로웠다.
특히, 나를 믿고 머나먼 상하이까지 따라와 준 처자식에게 보이는 모습이라곤, 재취업에 실패한 부끄럽고 무기력한 가장의 뒷모습뿐이었다.
사실 영어가 내 발목을 잡은 건 졸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학 초부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겨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고, 토론 위주의 수업이다 보니 내 의견을 주저 없이 바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학창 시절 내내 단어 암기와 문법 위주의 공부만 고수해 온 나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울러 수업 준비를 위해 읽어야 하는 과제 분량도 엄청나서 거의 매일 새벽 2시가 되어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장학금을 받거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단지, 졸업만 제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간신히 턱걸이로 졸업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졸업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내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단지 그 환경에 적응했을 뿐, 영어 실력이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구직 활동을 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수십 차례 완곡한 거절(Reject)의 메일을 받은 끝에 결국 다시 학교를 찾아갔다. Career Consultant로 활동하던 교수님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의 절실함이 닿았는지, 교수님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따로 시간을 내어 이력서 포맷부터 문장 하나하나를 교정해 주셨고, 나중에는 면접까지 지도해 주셨다. 그 덕분에 조금씩 면접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면접이라는 게 또 내 발목을 잡는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이력서를 검토한 뒤, Screening이라 불리는 첫 번째 면접을 인사부와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는 지원자의 기본 자질과 경력을 확인하며, 통과 시 대략 2주 안에 Hiring Manager와의 면접이 잡힌다. Hiring Manager 면접을 통과하면 Peer Interview, Role Play 또는 Presentation, 그리고 임원 면접까지 이어지며, 이 모든 과정은 보통 3~4개월 동안 5~6회의 면접을 거쳐 마무리되며, 이후 연봉 협상 단계로 넘어간다. 하지만 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인사부 Screening Interview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비영어권 학생에게 영어 면접은 부단한 연습 외에는 답이 없다. 나는 간단한 자기소개나 지원 사유처럼 항상 받게 되는 질문 약 30~40개를 미리 준비했다. 각각의 답변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나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고,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연습했다. 특히, 단순 암기에 그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답변을 준비할 때는 항상 머릿속으로 구조와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연필로 공책에 써가면서 연습했다. 이런 방식은 답변이 더 생동감 있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아내가 영어선생님이다 보니 함께 준비할 기회가 많았다. 아내의 도움으로 대화와 피드백을 통해 더욱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준비하다 보니 결국 Hiring Manager와의 면접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20번 이상의 실패를 겪은 후에야 얻어낸 소중한 결과였다. 사실, 면접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다룰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선 지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는 최종 면접을 마치고 연봉 협상을 시작했으며, 베이징에 있는 또 다른 회사에서는 최종 면접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 여정은 정말 멀고도 험난했다. 영어가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었고, 학기 중 네트워킹을 소홀히 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내 부족함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까지, 수입 없이 지출만 계속되던 2년의 시간은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유학을 시작하며 가지고 온 전세 자금도 이미 바닥났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극도로 힘든 시기였다. 상하이에서의 2년 반은 그야말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결국, 늦게나마 결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싱가포르를 선택할지, 아니면 베이징을 선택할지 고민할 시간도 필요했다. 싱가포르는 IBM 재직 시 출장 몇 번 가본 것 말고는 정보가 전혀 없었고, 베이징은 상하이만큼 잘 발달된 도시이긴 했지만 당시 매연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천식을 앓아온 아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베이징에서의 제안이 더 매력적이었지만, 싱가포르의 생활도 고려해 볼 만했다. 어찌 되었든, 어느 도시로 갈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충분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도 정리하고 머리도 식힐 겸 잠시 한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동안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기 위해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인사도 드리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견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들어온 김에, 2년 반 동안 받지 못했던 건강검진도 받기로 했다. 입국하자마자 강남에 위치한 병원에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짧은 일정 탓에 최대한 빨리 건강검진을 끝내야 오랜만에 친구들과 마음껏 회포를 풀 수 있고, 다른 일정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검진을 받았다.
몇 시간 후,
좌측 콩팥에서 직경 6cm가량의 커다란 혹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 혹은 악성종양으로 확인되었고, 결국 암 판정을 받았다.
뭐, 이런 개 같은..,
이런 개 같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삶은 종종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래도 계속 흐른다.
오늘도 암과 싸우고 계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비샨(Bishan) 우리 집에서
2022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