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겨울은 가는 곳마다 비가 온다. 페낭도 낮에 햇빛이 비쳤는데 숙소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페낭의 숙소인 Mercure Penang Beach Hotel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로비에 도착하자 눈에 펼쳐진 커다란 야자수 2개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예뻤다. 비록 바닷물은 에메랄드 초록빛은 아니지만 주변이 아름다웠다. 2층 방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아담하고 밖의 야자수는 예쁜 등을 달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1층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누군가 페낭의 음식이 맛있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저녁과 아침을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긍정적 사고 이어서인지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페낭의 갤러리를 찾아 나선다. 여행을 할 때마다 갤러리와 박물관을 찾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미술관은 많이 가지 못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외국에 오면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다.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생각들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페낭은 작은 마을이어서 전철이 없으니 버스 타는 연습을 해본다. 뚜벅이 여행자의 기본은 버스이리라. 버스를 타다 보면 현지인이 된 기분도 들고, 모르는 것을 도전한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마음을 들게 하여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호텔 앞에 정류소가 있다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데스크에 물어보니 건너편 나무에 서 있다가 손을 들란다. 이런~ 촌동네에서 하던 방법인데.. 버스정류장 표시도 없는 곳에서 알려준 대로 버스를 기다렸다가 손을 드니 버스가 멈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사용했던 Touchgo 카드는 여기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목적지를 물어보고 현금으로 2링깃을 내란다. 그러면서 영수증을 준다. 목적지를 정하고 구글맵으로 위치를 가늠해 본다. 해외여행 시엔 구글맵이 나의 나침판이다. 버스 오는 시간도 거의 정확하고 정류장도 경유를 알려주니 대충은 알 수 있었다. 갤러리 근처에 온 것 같아 운전사에게 내리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잘 알려준다. 저렴하고 시간도 편리해 앞으로 자주 이용할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큼직 막 한 간판에 Yahong Art gallery라고 쓰인 곳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갤러리인 줄 알았는데 수공예품과 바틱 예술품을 판매하는 중국 상점이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약간 실망감이 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나무와 청동조각상 같은 골동품과 군데군데 있는 그림이었다. 바로 이 그림들이 유명한데 말레이시아 바틱 예술가 추아 태안 텡과 그의 두 아들 예술가의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바틱은 아시아 사람들의 축제용 의상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는 고대 예술 형태로, 텡은 바틱그림의 아버지이자 거장으로 유명하며 바틱의 고대 공예를 미술형태로 변형한 예술가이다.
바틱과 수채화 그림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미 좋아하는 그림은 말하기 전에 이미 찰칵했다
나중에 이런 풍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원시적인 냄새가 물씬 나며 엄마와 자녀의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평화로운 모습을 그리고 싶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할 수 없이 그의 그림 한 점과 나무로 만든 탈을 기념으로 샀다. 1층의 골동품들을 자세히 보니 족장의 지팡이나 에일 머그잔과 말레이시아 자랑인 주석 작품들이 있었다. 처음엔 다소 당황했으나 그의 작품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갤러리를 나와 페낭섬의 아름다운 바투 페링기 해변을 걸어본다. 해변을 걷다 보니 유명한 카페도 있고 숙소의 바다보다 더 큰 규모의 페링기 비치가 펼쳐졌다. 해변을 달리는 말을 타라고 귄유하는 아저씨와 자기 가게에 들어와 음식을 먹으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들이 내 뒤를 따라다닌다.
나는 호객행위 아저씨 따라 해변가 식당에 앉아본다. 식당 위생이 찜찜하지만 양꼬치가 맛있을 것 같아 사태를 시킨다. 양이 너무 많다. 종업원은 한국에 몇 년 전에 일했다고 한국어를 자꾸 말해 웃음을 유발한다. 수원에서 일했다는 그는 월급도 많고 사장이 잘해줬다고 한다. 나쁜 사장이 많을 텐데 좋은 기억을 가지게 해 준 그 사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에 온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를 보며 새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숙소로 버스 타고 돌아오며 주변을 보니 필리핀 마을을 연상시키는 동네인 것 같다.
숙소로 무사히 돌아와 밤바다를 바라본다. 아~ 그곳에 바다물살 위로 비치는 둥근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언제 저 달이 한국에서 여기까지 내 뒤를 따라왔나? 세계 어디를 가도 변함없이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달을 보면 나의 마음이 아련히 먹먹해진다. 물결 위로 번지는 달빛의 흐름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음과 마음이 뚫린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달은 바다가 있다는 걸 알려주듯 검은 바다 위를 말없이 비춰주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보고 싶어 진다. 해변에서 누군가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잊힌 기억들이 달빛사이 물결 위로 흐르고 있다. 내 마음도 점차 출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