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여행
기나긴 겨울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어 친정 가족과 함께 계획한 나트랑 여행이었다. 따뜻한 햇살이 푸른 바다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해변에서 어수선한 정세에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찾아간 곳이다.
베트남 중부 해안에 위치한 나트랑은 참파왕국시절로 거슬러올라가 오랜 세월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등 여러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발전했는데 특히 프랑스 식민지때 리조트 지역으로 개발되면서 인기 있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베트남어로는 냐짱이지만 1940년대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나트랑이라 불렀다고 하며, 베트남 전쟁 시 미군의 군항으로 사용되어 전쟁의 격전지가 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트랑의 아름다운 해변이 여러 식민지 세대를 겪으며 휴양지와 놀이공원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로 발전한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비에젯항공을 타고 깜란 공항까지 비좁은 좌석에 5시간 10분의 비행시간은 패키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상당히 불편했다. 그러나 소박한 공항과 넓지 않아서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은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내리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기분 좋게 온몸을 녹여주며, 가이드와 만나 아침식사로 근처 편의점의 분짜국수는 베트남에 왔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아침에 도착한 우리는 12시에 체크인하는 숙소에 들어와 감탄과 환호성을 지른다. 햇살에 반짝이는 파란 수영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얼어붙었던 마음이 일순간에 녹아내리는듯하였다.
오전에 도착하여 시간여유가 있어 옷을 여름복장으로 갈아입고 냐짱의 시내로 갔다. 냐짱 해변의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지며 그 주변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트랑 광장 주변에 꽃으로 장식된 레스토랑에 들어가 베트남 전통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커피 필터에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 향내를 맡으며 나트랑의 여유를 맛보고, 베트남의 전통모자를 구입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다음날은 본격적으로 관광에 나서는 날이다. 이 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생일이 겹쳤는지 모르고 예약을 한 상태라 미리 생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와야 했다. 이번 생일은 잔치상을 받는 특별생일이라 조금 고심을 했다. 아이들은 요즘엔 잔치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말해 처음엔 그냥 간단한 식사 한 끼로 때우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으로 갈 길이 뒤에 걸어온 길보다 훨씬 짧게 남아있는 이 시간에 한 번밖에 오지 않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생각을 바꿨다. 생일이라고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다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의 귀중한 시간들이니 내가 만든 생일상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정가족들과 한복 이벤트를 열어 모두 한복을 입은 채 젊은 아이들처럼 사진도 찍고 동심으로 돌아가 미리 생일을 만끽했다.
한복이벤트의 여흥이 가시기 전에 비행기를 타고 나트랑에 도착하여 생일을 맞이하니 기분이 조금 달랐다. 여행 시에 생일을 맞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생일의 연속 잔치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 여행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함께 한 언니와 동생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드는 시간이었다. 언제 건강이 허락되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운 일이다.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잔을 하려고 생각했다.
관광 후 저녁식사시간에 가이드가 갑자기 큰 케이크를 들고 나온다. 내가 저녁에 한잔하려고 말해두었던 생일이란 말을 기억했나 보다. 한국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커다란 상자 안에 큰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다. 토핑처럼 케이크 위에 멋진 여자사진과 왕관을 비롯한 여러 장식 소품들의 베트남 케이크를 보는 순간 너무 감동적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녁을 먹은 후 식당에 모인 사람들이 같은 일행이 아닌데도 모두 박수를 치며 생일 노래를 불러주어 더 감동적이었다. 패키지로 처음 만난 가이드가 차려주는 따뜻함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패키지는 날씨와 가이드가 90% 이상 여행의 기분을 좌우한다고 한다. 세직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이드는 언니가 한국말을 왜 이리 잘하냐고 물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처럼 생겨 우리를 웃게 하였다. 조그만 체구에 조금이라도 베트남을 알려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하며 우리 할머니들 일행을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여행객의 기분을 맞추며 융통성을 보여주고 여유를 주는 가이드여서 마음이 놓였다. 경험상 가이드가 까다롭거나 어려우면 여행이 조심스럽고 너무 노련한 사람이어도 조금 불편한 것 같다. 오히려 조금 서툴지만 열성적인 젊은 사람이 좀 더 친근한 것 같다.
가이드 덕분에 식당 안은 모르는 다른 일행들과 한마음이 되어 훈훈한 분위기가 되고 종업원들도 한결같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처음엔 너무 큰 케이크이라 당황했지만 케이크를 자르며 이곳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정도로 큰 케이크를 준비했구나 생각하니 가이드의 섬세함에 다시 한번 따뜻함을 느꼈다.
식사 후 우리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분위기 좋은 sailing club으로 장소를 옮겼다. 가이드는 현지가이드인 Peter를 우리 일행에게 안내를 부탁해 주었다. 피터가 안내한 장소는 바다를 배경으로 나트랑의 글자가 불빛으로 반짝이는 로맨틱한 장소였다. 간단한 칵테일을 주문하는 것을 도와주고 매니저를 불러 택시 잡을 때 부탁하라고 우리를 소개해준 뒤에 떠났다.
우리는 밤바다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들떠 칵테일을 마시며 서로의 건강을 건배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Happy birthday to you!" 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돌아보니 매니저와 몇몇 웨이터들이 케이크와 촛불의 판을 든 채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감격적인 일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스치고 지나간다. 예쁜 생일케이크판을 보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따뜻함에 저절로 가슴이 뭉클했다. local guide인 Peter가 매니저에게 부탁했나 보다. 갑자기 한국인 가이드와 로컬가이드의 섬세한 배려심에 출렁이는 파도소리가 노래처럼 마음에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사소한 배려가 나에게 앞으로 잊지 못할 냐짱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생일이었다. 세직 가이드와 피터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행복한 마음을 심어준 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