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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으로 돌아간 여고생 이야기

에세이

by 청현 김미숙

1박 2일의 동창 모임에 잠깐 망설여진다. 자주 만나지 않은 친구들과 한 밤을 함께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도 다가온다. 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50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 누군가의 부인, 엄마, 할머니로 살아왔을 조금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서먹하지 않을까? 대화가 잘 이어질까?

망설임을 뒤로하고 50년 만에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 참석하기로 마음먹는다. 출발하기 며칠 전 여고 동창 친구의 우울한 소천 소식을 들으며 살아있을 때 50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보기로 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아직은 건강하니 친구들과 만나서 여고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회포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어진다.

결과는 기대이상으로 동심으로 돌아간 즐거운 시간이었다. 얼굴의 주름살이 점차 사라지고 머리 땋은 여고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의 모습 친구들과 대화하고 마음껏 회포를 푼 시간들이었다.


서울과 전주 친구들이 무주구천동에서 함께 모였다. 버스에서 서로의 간단한 소개로 이미 안면을 익힌 친구들은 맛있는 점심식사에서 깔끔히 국물들을 거의 비우며 벌써 서로에 익숙해진다.

제일 먼저 우리의 발걸음은 전라북도 무주의 덕유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해발 1,614m의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으로 향한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로 유명하지만, 4월 21일인데도 봄꽃은 보이질 않고 나목들이 산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곤돌라(gondola)를 타고 가며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를 친구와 흥얼거리며 차창을 바라보니 꽃도 아름답지만 오히려 덕유산 특유의 담담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정상을 오르는 계단은 덕유산 아래의 풍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도 있고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한 주목나무가 나목으로 우뚝 서 위엄을 자랑하며, 하늘과 구름 그리고 강과 산이 서로를 품어 안고 있다

정상에 올랐을 때 산과 한가로이 놀고 있는 구름을 보니 저절로 마음이 힐링이 된다. 구름도 쉬어가는 겹겹이 쌓인 각각의 다른 색깔을 품은 산봉우리들과, 산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겨울철에 눈 덮인 풍경이 '한국의 스위스'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는 향적봉은 멀리 지리산, 가야산, 적상산 심지어 마이산까지 봉우리가 보일 정도로 겹겹이 봉우리가 겹쳐있어 신비롭기만 하다.

남는 게 사진이라 했나? 열심히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친구들이 예뻐 보인다.


등산을 하고 내려와 뷔페로 잘 차려진 저녁을 먹고 드디어 우리들이 기대하던 3학년 반별 장기자랑이 이어진다. 공부만 하고 잘 놀지 못했던 70년대의 범생이 여고시절 친구들이 얼마나 변했을까? 그러나 잘하고 못하고는 우리 시간에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한 마음으로 함께 무대에서 즐기는 시간이 소중했다. 50년 사이 청순한 모습에서 변형된 모습이면 어떠랴? 각반 열심히 준비한 모습 그대로 그 시간을 서로 함께 즐기는 시간은 흥미로웠다. 나도 뱃살 때문에 잘 돌아가지 않는 허리를 오랜만에 움직여 본다.

우리 반은 시낭송을 하기로 되어있어서 같은 스카프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한 친구의 말이 낭송하는 친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카프를 배경으로 설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낭송을 맡았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려 했는데 너무 미안하였다. 한 친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친구들의 협조로 낭송은 동영상속에 들려오는 '대박이다'를 시작으로 '멋있다'로 끝나는 호평을 받으며 끝났다.

기꺼이 배경으로 얼굴을 가리며 낭송하는 내내 스카프를 들고 있느라 팔이 힘들었을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든든하게 뒤를 받쳐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핑크빛 스카프보다 더 진한 물결이 심장을 물들인다.

숙소에 돌아온 후 한 방에 모여 고교시절로 돌아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즐겼다. 이야기할 당시는 지금의 나이가 아니다. 17-8세 나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던 소녀들의 때 묻지 않은 이야기가 활짝 피었다.


다음날엔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가 온들 어떠랴? 오히려 비 오는 날엔 구름이 산을 베개 삼아 누워 쉬는 모습도 즐기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으니 더 운치 있는 날이다.

우리는 반디랜드에 들어가 반짝이는 반딧불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왔을 때와 확연히 다르게 잘 가꾸어진 모습이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게 잘 꾸며놓았다.

무주 하면 반딧불이를 빼놓을 수 없다. 반딧불이에 ''반디'나 '개똥벌레'등 여러 별칭으로 불러지는데 그중 개똥벌레가 가장 잘 알려졌다. 개똥이 많은 습한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과 "개똥처럼 흔하다"는 의미에서 개똥벌레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반딧불은 흔하기는 하지만 자기 본연의 빛을 발하는 생명체이다.

반딧불이는 루시페린이라는 물질과 루시페레이스라는 효소를 이용해 산소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데 이 과정에서 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냉광이 생성되며,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컷 반딧불이는 짝을 찾기 위해 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빛을 깜빡이며 발광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열심히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친구들을 보며 아직도 학구열에 불타는 여고생의 얼굴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황가람의 '개똥벌레이지만 그래도 괜찮아 눈부시니까'라는 <나는 반딧불> 이리는 노래가 저절로 생각난다.


이어서 머루 와인동굴로 장소를 이동한다.


무주 머루 와인 동굴은 원래 무주 수양발전소 건설 당시 굴착 작업용 터널로 사용되던 곳인데 무주군이 리모델링하면서 오늘날의 와인 동굴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 동굴은 내부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 머루 와인 숙성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데 깊고 풍부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머루는 일반 포도보다 당도가 높고, 폴리페놀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여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주며 와인동굴은 일정한 온도(13~15℃)를 유지하여 최적의 숙성 환경을 제공한다고 한다.

동굴은 캄캄한 밤에 동심으로 돌아가 놀기에 좋을 정도로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먼저 머루 한잔 따르고 동굴에 들어간다.

형광 불빛아래서 해설사의 노련한 말솜씨와 사진기술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반짝이는 별들을 손에 잡아보고 머루포도로 장식한 농장의 포토존에서 폼을 잡으며 마음껏 즐겼다.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는 형광물질을 잡으며, 깔깔거리고 웃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연인처럼 서로를 마주하며 별밤의 분위기에도 취해본다.

동굴 끝부근에 있는 와이너리 족욕체험은 지금까지의 피곤을 풀어주며 기분 좋게 이마에 땀이 맺히게 한다. 발을 와인에 담그며 못다 한 담소를 나누면서 친구들의 따뜻해지는 심장소리에 온몸이 사르르 풀어진다.


족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해설사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한다. 내가 첫 부임했을 때 가르치던 제자였다.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다가와 인사를 해준 제자가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영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어 영어해설사로도 활약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제자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고 전화를 해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제자가 친구 그룹의 해설을 맡고 있었는데 학교를 이야기하다 내가 현장에 있다고 하니 해설을 미루고 달려갔다고 한다. 제자가 선생님에게 반갑게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방송에서 오랜만에 상봉하는 TV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아서 꼭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상봉 장면을 찍어주기 위해 따라와 사진을 찍었다고 말해준다. 이런 고마운 친구들이라니...

달려와 반갑게 인사하고 머루 와인상자를 선물로 준 제자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다. 처음 교사를 했을 때 과다열정으로 시행착오를 많이 했음을 가끔 미안했는데, 한걸음에 달려와준 제자 때문에 행복감이 배가 되었다.


동창회모임을 다녀온 후 다른 여행과 달리 훈훈한 감정에 하루를 보낸다. 이 행사를 위해서 수고한 회장단과 임원진 친구들 덕택에, 몸과 마음이 풍성해진 우리의 시간들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이었다. 많은 친구들을 위해 숙소와 음식점 섭외등 행사진행의 많은 노력으로 조금도 불편 없이 친구들이 서로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던 1박 2일이었다.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친구들, 가까이 다가와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말해준 친구들, 따뜻한 시선으로 한마음으로 서로의 등을 토닥이던 시간들이 벌써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흘러가 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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